초록 close

본고는 196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한일 양국의 동남아 지역주의 구상, 즉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와 동남아시아개발각료회의(SEAMCED)의 추진과정을 비교 분석했다. 이들은 외양은 비슷하지만 실상은 대조적인 구석이 많다. 예컨대 아스팍은 한국의 독자 구상으로 출발했지만 개발회의는 미국의 구상에 일본이 화답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대미 협의과정에서 아스팍은 미국의 의견이 수용되는 형태였다면 개발회의는 상대적으로 일본의 입장이 관철되는 모양새였던 것도 대비된다. 전자에 일본이 참가했다면 후자에 한국은 불참했던 것도 서로 다르다. 이상과 같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한미/일미 관계의 위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을 자신들의 아시아정책의 “키(key)”로 여긴 반면, 한국에게는 국내 문제 또는 기껏해야 한일문제 해결을 기대했을 뿐이었다. 더욱, 서로 다른 두 구상의 출현은 갓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관계에 다시 미묘한 긴장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아스팍이 약화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개발회의 참여를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양국은 신경전을 벌이던 한일회담의 관성에서 여전히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얽어맨 ‘한일협정체제’는 어딘지 불안정하고 어설펐다.


This article analyzes Korea and Japan’s plan for Southeast Asian regionalism in the mid-1960s. These plan are similar in appearance, but in reality there are many contrasting points. For example, ASPAC was started as a Korean initiative, but SEAMCED was appeared in the form of Japanese responses to the American initiative. In the process of consultation with the United States, it is also contrasting that ASPAC has accepted the opinion of the United States, while SEAMCED has achieved the position of Japan relatively. Japan participated in ASPAC, but Korea could not participate in SEAMCED. This difference is due to the different status of Korea-US/Japan-US relations. Moreover, the emergence of two different plan brought about a subtle tension again in Korea-Japan relations that had just “normalized” diplomatic relations. In particular, Korea has fallen into a dilemma to consider participating in SEAMCED while worrying about the possibility of weakening ASPAC. These two countries still couldn't get away from the inertia of the Korea-Japan talks that were in a battle of nerves. The “System of 1965 Treaty” that was barely established was somewhat unstable and clum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