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몽골 건국 시기부터 카치운 일가는 제국의 확대·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가문의 수장 알치다이는 동몽골에서 독자적인 울루스를 형성하고 여러 군사 활동에서 큰 공을 세우고 새 대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에 적극 참여했다. 그의 아들 차쿨라는 뭉케의 남송정벌에 출정하고, 쿠라쿠르는 쿠빌라이를 옹립하고 아릭부케를 격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 같은 공적으로 인해 카치운 일가는 몽골 정부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아 크게 성장하고 높이 존숭되었다. 알치다이의 아들 카단은 至元24년(1287) 나얀의 반란에 참여하고 그가 패사한 후 반군을 이끌고 4년여간 저항활동을 지속했다. 거병 초기 2년간 동몽골·요동에서 횡행하다가 토벌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군대를 양분하여 한 부대를 이끌고 요동의 동남 해안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들 노적이 다른 부대를 이끌고 요동 중심부를 통과하여 압록강변에 이르렀다. 그들은 각각 고려의 동·서북방으로 침입하고 燕岐에서 합세하여 몽골·고려 연합군과 결전했으나 대패함으로써 북방으로 도주했다. 카단은 고려를 벗어나기 전 사망하고, 노적은 요동에서 몽골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The Qači’un family made great contributions to the expansion and development of the empire from the early days of Mongol. Alchidai, the leader of the family, rendered distinguished services in various military activities,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Quriltai to enthrone the great Khan. His son, Chaqula, went to Möngke’s war to conquer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Qulakur contributed greatly to the enthroning of Qubilai and the repulse of Ariq Böke. Because of these contributions, the Qači’un family grew a lot with the support from the Mongol government. Alchidai’s son, Qadan, joined the Nayan’s rebellion in 1287. And he led the rebel forces and continued resistance activities for four years after Nayan had been defeated and killed. As the attacks of the punitive forces got stronger, he moved to the southeastern coastal area of Liaodong with one unit of soldiers. Then, his son, Laode, went through the center of Liaodong and reached the side of Aprok River leading another unit. They soon invaded Goryeo from northerneast and northernwest, joined their forces at Yeongi(燕岐), and fought against the combined forces of Mongol and Goryeo, but were defeated and ran to north. It’s presumed that Qadan died before he could go out of Goryeo, and Laode was caught and executed by Mongol army in Liao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