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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세기 전반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던 이나사(移那斯)와 마도(麻都)라는 인물의 행적을 검토한 것이다. 그들은 당시 한반도와 바다 건너 왜(倭)의 고대국가들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경계인(중간자)으로서 존재하였다. 그들은 북부 가야지역 수장층의 일원이었으며 백제의 공격을 받아 가야지역 남부의 안라국으로 이주했다. 이것이 후일 그들의 활동이 反백제적 성격을 띄게 되는 원인이었다. 그들은 또한 왜와도 사회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안라국의 입장에서는 이주민이었으며 왜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으로서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경계인(중간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 이나사와 마도의 이러한 입장은 6세기 전반 한반도 남부의 정세에서 그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 요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른바 ‘일본부’로서 안라국을 중심으로 한 가야제국(加耶諸國)이 신라에 접근하는 것을 중재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신라와의 관계를 쉽게 개선할 수 없었던 가야제국과 왜와는 다른 입장에 서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야제국과 신라를 넘나들며 외교 활동을 진행하면서 신라의 직위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신라에도 모종의 소속감을 가질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 역시 그들이 신라인이 되었고 신라에서 그들을 신라인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계인으로서 이나사와 마도가 한반도 남부의 외교 무대를 누비며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제와 신라 관계의 균열과 가야제국의 줄타기 외교로 이해되는 6세기 전반 한반도 남부의 국제정세가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정세에 변화가 시작되면 그들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548년 마진성 전투와 그 전후 처리 과정에서 그들은 안라와 왜로부터 버림받고 축출되었다. 한반도 남부의 외교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원천인 경계인으로서의 성격은 동시에 그들이 한반도와 왜의 사이에서 어느 집단에도 속할 수 없고 모두에게 버림받는 결말을 맞이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mined in this article are the activities of two individuals, named Inasa(移那斯) and Madoh(麻都), who lived o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early half of the 6th century. They were closely affiliated with not only the Korean peninsula but also with the Japanese Wae(倭) across the sea. But they were not exclusively tied with either side. Strictly speaking, they existed right in the middle of those ancient states, as rather ‘marginalized’ beings. Initially, they were members of the leading party of the Northern Gaya region. After being attacked by Baekje they were forced to relocate to An’ra-guk at the south side of the Gaya region, and began to display anti-Baekje activities. They also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wth the Japanese Wae. But they were still outsiders to both An’ra and Wae. Their such status was what also enabled them to widen the range of their activities, especially in the southern side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6th century. Formerly as a ‘Japanese unit(“Ilbon-bu”),’ they served as mediators between Shilla and Gaya, of which the latter –with An’ra as its core- was trying to approach the former. They were able to take on such role because they did not have any antagonized relationship with Shilla, whereas both Gaya and Wae were having difficulties establishing amicable relationships with the Shilla people. Inasa and Madoh continued negotiations between the Gaya region and Shilla, and also received official titles from the latter. In the process, they cultivated an identity affiliated with Shilla, and probably a sense of belonging as well, but that did not mean they became full Shilla citizens, or came to be considered as Shilla brethren by the Shilla people. The Korean peninsula in the 6th century’s early half was witnessing entangled relationships in need of diplomatic negotiations and resolutions. Baekje and Shilla were showing a strained relationship while the Gaya states were desperate, and as marginalized beings, Inasa and Madoh could serve as diplomatic intermediaries whose service turned out to be beneficial to all parties involved. But changes to such environment also brought changes to their status as well. After the Majin-seong fortress battle in 548 as well as its aftermath, their service was no longer required and they were both expelled or abandoned from An’ra and Wae. They were able to thrive in a situation that required active arbitration, but as they did not belong to any of the parties they were trying to connect, a tragic ending was inevi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