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는 신라 내외병마사의 구분 기준과 변화, 그리고 운영 양상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 글이다. 신라는 상고기부터 내외병마사라 일컬으며 국가의 군사행정업무를 표현하였다. 『삼국사기』의 내외와 관련한 용례를 살펴보면 이는 중앙과 지방으로 이해되는 모습을 보이나, 군적·축성과 같이 군사행정업무는 중앙과 지방이 유기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단순히 중앙과 지방으로 분리하여 볼 수 없다. 따라서 그 범위를 수정하여 왕성을 중심으로 그 안은 內, 밖은 外라는 관념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사금기 이찬·이벌찬·서불한 등 고관에게 내외병마사를 위임할 당시 신라와 소국과의 관계는 복속의 형태로서 완전한 영역지배가 아닌 속국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실제 지배영역은 왕성을 중심으로 한 경주지역에 그쳤으며, 이는 더욱 당시 내외가 왕성을 기준으로 구분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한편 진흥왕대에 이사부를 병부령으로 임명하면서 내외병마사를 관장케 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병부의 관장업무는 내외병마사라는 이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내외병마사에 대한 기록이 마립간기 이후 이사부가 병부령에 임명되는 진흥왕대까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교체되는 시점에는 내외병마사의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내병마사는 왕이 직접, 외병마사는 장군에게 위임하여 관장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병부와 시위부의 설치로 최종적으로는 시위부=내병마사, 병부=외병마사라는 관리 형태로 제도적인 완비가 이루어졌다고 이해된다.


This article consider the criteria, changes, and operational patterns of “Naeoebyeongmasa(內外兵馬事)” of Silla. Silla expressed the military administration of the country, calling it a “Naeoebyeongmasa(內外兵馬事)” since Upper-Ancient(上古) Period. The inside(內 )and outside(外) are understood as central and local in the Samguksagi(『三國史記』). However, military administrative work cannot be regarded simply as central and provincial due to the nature of central and local affairs being carried out organically. Therefore, the scope should be modified to distinguish between inside(內) and outside(外) based on the royal castle(王城).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small states(小國) during this period was not complete territorial control as a form of obedience. Therefore, the actual area of control was only Gyeongju, which was centered on the royal castle. This raises the possibility that the inside and outside were divided based on the royal castle at that time. Meanwhile, records show that Yi Sa-bu was appointed as a byeongbu-ryeong(兵部令) at King Jinheung(眞興王) period, and based on this, it was widely understood that the byeongbu’s duties were “Naeoebyeongmasa(內外兵馬事)”. However, records of “Naeoebyeongmasa(內外兵馬事)” have not been confirmed from Maripgan(麻立干) period until the reign of King Jinheung, Thus the separation of “Naeoebeyongmasa(內外兵馬事)” was made at the time of being replaced by Maripgan(麻立干) from Yisaguem(尼師今). As a result, it is thought that Naebyeongmasa(內兵馬事) was directly managed by the king, and Oebyeongmasa(外兵馬事) was entrusted to the general.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 installation of Byeongbu(兵部) and Siwibu(侍衛府) ultimately resulted in equipped in the form of management, Siwibu=Naebyongmasa and Byeongbu=Oebyeongm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