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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동명성왕과 유리왕의 즉위년 기사는 서로 다른 건국신화를 전하는 것과 같이 유사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주몽과 유리는 서로 다른 시기에 부여로부터 이주해온 세력으로서 주몽 집단은 졸본부여 세력과, 유리 집단은 송양의 비류국 세력과 서로 결합하였는데,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이후 왕계를 일원화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주몽과 유리의 왕계 상에 단절적인 면이 보인다. 주요 정치세력의 위치를 비정해보면, 건국지로 지목되는 ‘졸본’은 高力墓子村 일대이다. 상고성자고분군~망강루를 연결하는 공간은 이 지역에 더욱 오랫동안 정착해있던 정치세력, 즉 ‘累世爲王’하였다는 비류국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졸본부여의 경우 부이강과 혼강의 합류 지점에 정착한 후 기원 전후 시점에서 환인 일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고 보았다. 한편 유리 집단과 송양의 비류국 세력의 결합, 주몽 집단과 졸본부여 세력의 결합, 그리고 이들의 각축 과정이 모두 비류부(연노부)의 형성 과정으로 설명된다.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비류부 세력들 중 유리 집단과 송양의 비류국 세력이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했으나, 이후 주몽과 졸본부여 세력이 대무신왕대 이후 남하하여 집안 및 통화 지역에 자리잡은 부여계 유이민 세력(연나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계루부 왕실로 등장하였다. 계루부의 등장은 곧 환인 중심에서 집안 중심으로 고구려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바, 즉 왕실교체와 천도는 결국 계루부의 등장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the aspect of forces of Goguryeo and to examine the formation process of Goguryeo by combining and subjugation of these forces. This paper also aims at examining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replacement process of royal family in the Goguryeo’s early days and the operation and the changing aspect of political system around that replacement through classificational consideration. After the formation of Goguryeo, the royal family Biryubu was replaced by Gyerubu. Gyerubu appeared later by the combination of Jolbon Buyeo forces in the Biryubu and figures from Buyeo emerging in earnest after the period of King Daemusin. The replacement of the royal family from Biryubu to Gyerubu was eventually the process of appearance of Gyerubu, and was associated with the transfer of capital from Jolbon to Jian. Gyerubu sought to reorganize the ruling classes, and this appeared in the change of operation of government organ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