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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세기 초반 나치의 부상과 맞물린 극단적 민족주의의 기승과 몰락, 그리고 제2 차 세계대전의 패망과 국가 재건에 이르기까지 독일인들의 실존을 위협하는 일련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독일 안팎에서 몸소 체험한 독일 지성사의 대표자 토마스 만과 카를 야스퍼스가시대진단과 위기극복의 관점에서 어떻게 괴테를 이해하고 수용했는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목표를 둔다. 만과 야스퍼스는 패배감과 상실감으로 무기력해진 상태에 젖은 독일인들에게 독일 고전주의의 상징이자 교양시민계급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괴테를 소환함으로써 새로운삶의 노정을 시작하기 위한 동력을 제공하고자 한다. 만과 야스퍼스는 독일인들 스스로가 새로운 역사건설을 위한 내적 각성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괴테의 인생과 작품, 세계관, 사회국가적 사건들에 대한 통찰을 재해석하지만, 그 방향성이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야스퍼스는괴테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태도와는 별개로, 맹목적인 괴테 추종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음을지적하고, 오히려 그의 한계를 일깨움으로써 괴테에 대한 새로운 적응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반면에 토마스 만은, 새로운 정치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동포들에게 삶의 귀족주의를 표방하는괴테의 비정치적인 세계시민성을 앞세운다. 두 지성인의 냉철한 사고를 통해서 괴테는 독일정신의 이상을 실현시킨 경탄의 대상임과 동시에 독일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여는데 있어서 여전히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대한 독일인이자 유럽인, 그리고세계시민으로 각인된다.


Diese Studie behandelt die Erkenntnisse über Johann Wolfgang von Goethe in Vorträgen von Karl Jaspers und Thomas Mann, die selbst zu Beginn des 20. Jahrhunderts unter einer Reihe politischer und gesellschaftlicher Katastrophen gelitten haben, sowie unter der Brutalität der nationalsozialistischen Politik und der fatalen Zerstörung ihres Heimatlandes. Das Hauptinteresse dieser Untersuchung liegt darin, der Frage nachzugehen, wie die beiden großen Denker im Hinblick auf die zeitgenössische Probleme und deren Überwindung Goethes Leben und Werke, seine Weltanschaung verstanden und akzeptiert haben. Goethe, der größte Mensch im Bereich deutschen Kultur, soll nach wie vor nicht nur als ein symbolisches Vorbild der deutschen humanistischen Klassik, sondern auch als ein Vertreter des traditionellen Bildungsbürgertums gelten. Aber es handelt sich nunmehr nicht mehr um die Verteidigung eines Goethe-Kultes, denn “es darf keine Rechtfertigung durch Berufung auf Goethe geben”(Jaspers 1984, 300) Vielmehr ist es notwendig, sich um eine neuartige zeitgemäße Aneignung von Goethe zu bemühen. Daher plädiert Jaspers für “eine Revolution der Goethe-Aneignung”(Jaspers 1984, 301). Und Thomas Mann weist auf die Nachfolge Goethes hin, nicht im Sinne des deutschen Provinzlertums(Vgl. Mann 1974, 757), sondern im Sinne des kosmopolitschen Europäertu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