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정여립 역모 사건에 대한 연구는 역모가 조작된 것인가, 아니면 미수에그친 사건인가 여부를 구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왕의 연구는 정여립 모반 사건이 모반으로 그 성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두고 상반된 결과를 도출해 왔다. 즉 연구자들은 모반의 실재성, 선동과 준비 과정의 여부, 대동계의 실체를 두고 다른 주장을 펴 왔다. 조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세 가지의 조건이 모두 결여된 것으로 모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이희권은 掛日錄을 근거로 정여립 모반 사건은 조작되었다고 이해하였다. 반면 역모설을 인정하는 학자들은 討逆日記을 근거로 모반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학계의 정여립 역모 사건에대한 논의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여립과 관련된 사료들을 검토해 본 결과 정여립 모반 사건은 모반사건으로 인정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정여립의 도망과 죽음으로 황해감사 한준의 고변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선조는 정여립의 시신에추형을 가한 후 권정례를 행하면서 이 일을 縉紳 역모 사건이라 규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계에서 떠나있던 서인들은 대거 정계에 복귀하였다. 정철은 지방 유생 양천회의 상소를 기회로 討賊의 의미를 밝힌다는명분을 내세워 동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이어갔다. 국왕에게 쓰이지 못한 점에 불만을 품은 전직 관료의 모반 사건은 그와 친교가 있는 인사들에 대한 탄핵과 처벌로 이어졌다. 진신 역모로 규정된 정여립 사건은서인들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서인들이 집권 명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정여립 역모 사건은 모반으로의 성격이 구체화하게 되었고, 정여립과 친교를 맺어왔던 동인 인사들이 진신 역모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


Until now studies have tried to determine whether it was treason or not. However, such studies have produced completely different results according to materials cited by researchers. It is true that this study is difficult to produce clear results. This treason is very important whether it is true or not. In this paper, the case was comprehensively reviewed through the relevant historical materials. Through these materials, I have re-organized this case. The incident seemed to end with Jeong Yeo-rip`s death, but it escalated into a political one. In this paper we looked at how this case developed into a political event. The review of the data does not confirm the details of the treason. However, with the death of Jeong Yeo-rip, the plot of treason was solidified to be true. This treason plot led to the return of Seoin who had been out of politics. With Seoin leading the state affairs, the case of Jeong Yeo-rip's treason expanded to a completely different aspect. Those unrelated to treason were punished. The character of treason described by Seonjo(宣祖) was politically exploited by the Seo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