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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투명성이 언급되고 있다. 투명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의 근간에서 본질적으로 모호한 인간 삶을 명료히 해명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의지와 열망이 사회관습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의식 깊이 새겨진 불투명성에 대한 학습된, 부정적 인식의 반증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삶을 견고하게 구축할 양식과 질서에 고전주의가 보였던 집착은 삶의 ‘제시 불가능한 부분’을 이성을 동원하여 해명하고자 한 계몽주의와 그에 반발하여 그 모호한 부분을 감성에 기대어 표현한 낭만주의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서구의 세계 인식에 각인되어 있다. 서구 근대가 체제 유지를 위해 보편 진리의 명료함을 앞세워 은폐한 삶의 모호한 부분을 결핍으로 인식하고 그 결핍을 표현하는 일은 현대예술의 몫이다. 우리 관심사인 언어예술은 언어라는 사회협약의 매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모순된 상황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현대 시는 태생적인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글 쓰는 자가 언어라는 사회협약과 기꺼이 불화하는 관계로 뛰어드는 가를 보여주는 예다. 그 불화를 극단으로 밀고 나아가는 프랑스 현대 시의 한 경향에서 그리고 탈근대 사유를 태동시킨 프랑스 포스트모던 비평이론에서 행해진 언어 성찰에서 우리는 본 연구를 뒷받침할 이론적 실천적 근거를 발견한다. 우리가 제시하는 성찰은 서구 근현대가 보여준 실재 인식에 대한 진단과 반성이다.


Face à l'intérêt grandissant pour la transparence dans divers domaines de la société actuelle, nous pouvons constater une volonté de saisir le réel, qui pourtant est foncièrement insaisissable. Dans la tradition occidentale face à la perception du réel, ce désir de transparence semble en partie lié à un parti pris négatif contre toute opacité quelle qu'en soit la nature. Il est profondément ancré aujourd'hui encore dans notre conscience collective. Ce fait se rapporte, à nos yeux, aux visions du monde modernes et postmodernes. Le neutre(Barthes), l'espace figural(Lyotard), la poésie rêvée d'une littéralité transparente(Hocquard) et la poétique de relation(Glissant) sont autant de propositions d'ouverture face à la vision totalitaire du monde promue par les modernes. Ces défenseurs de la vision postmoderne montrent que la vision moderne du réel ne fait que donner l'illusion de l'élucider par une fausse clarté aveuglante. Et ils invitent à faire face au réel tel qu'il est. Leurs idées nous conduisent vers une réflexion éthique sur la relation que l'on doit cultiver envers les autres tout en admettant ‘le droit à l'opacité’ et ‘le droit à la différence’, comme le propose Gliss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