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우리나라에서 확인되고 있는 炭化米와 紉痕資料 등 벼 자료는 신석기시대 중기이전단계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고고학적인 유적에서 확인되는 稻作農耕資料는 아직까지 靑銅器時代를 넘어서지 못한다. 最初의 도작농경은 중국 楊子江流域에서 야생벼를 재배하면서 시작되는데, 農耕地와 耕作道具, 그리고 재배와 수확에 이르는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水稻作體系로 완성되며 이 水稻作이 중국의 산동반도 일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受容된다. 우리나라 靑銅器時代의 대형 合刃石斧와 有溝石斧·石鑿 등의 木工具의 등장과 石刀와 같은 收穫具의 증가현상은 稻作農耕의 수용과 관련된 耕地確保 및 기술 발달의 근거라 하겠다. 初期稻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자료는 蔚山 玉峴遺蹟과 論山 麻田里遺蹟 등지에서 확인되고 있는 청동기새대의 水田이며, 이들은 곡간 沖積地나 구릉하부의 低地形에 선택적으로 조성된 小區劃水田으로 존재하는데, 水路와 洑, 그리고 用水의 유입과 배수를 위한 시설이 완비된 발달된 灌漑水田의 형태를 보인다.


Rice paddy cultivation in Korea began at the commencement of Bronze(3000-2300 yrs. BP.) which extended from the first step(of Bronze Age) to the Early Iron Age(2300-2000 yrs. BP.) Recent results of archaeological research indicate that rice paddy cultivation originated in the Yangtze river basin. This gradually spread to the other region, and eventually to the Shandung peninsula around 3000 yrs. BP. I think that some group of immigrants from Shandung region reached the Korean peninsula carrying with them the rice paddy cultivation, an entirely new system containing rice seeds and agricultural tools. It was further developed by the Bronze Age people in Korea. This marked the beginning of the Bronze Age, which involved techniques for reclaiming rice paddy fields, irrigation systems, various customs and rituals associated with paddy culti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