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17세기 동아시아는 명 왕조의 붕괴로 중화세계가 소멸한 가운데 모두가 자신의 풍습(態)을 강조하는 자기주장의 각축장처럼 변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일본에서도 정성공 부자가 반청 세력을 이끌면서 명청 교체기를 다룬 다양한 작품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극작가인 지카마쓰의 『고쿠센야캇센』이 주목을 받았다.『고쿠센야캇센』에서는, 순수한 일본인보다 와토나이(和藤內)라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혼종적 성격의 인물에 주목하면서 중국을 무대로 봉건적 윤리 체계의 완성을 지향했다. 전통적인 중화의 부재 속에서 만주풍습(夷態)을 몰아내고 중국적인 것을 회복하자는 것이 『고쿠센야캇센』의 작품 세계이다. 작가는 만주족에 의해 촉발된 국속(國俗)의 자각을 바탕으로 『고쿠센야캇센』을 통해 봉건적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중화 상실의 시대에 이민족이 유교적 중화 질서를 강조한 것으로 이질적인 존재가 실체와 명분을 일치시키려고 한 ‘경계인(지쿠라)의 중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Up to the 17th century, various peoples’ ethnic identities couldn’t be embodied in East Asian literary works. The resistant spirit that the father of Zheng Cheonggong was hostile to Qing dynasty in Japan had a great influence upon a lot of Japanese literary works. Above all things, Japanese playwriter Chikamatsu’s works attracted public attention. Chikamatsu attempted to dramatize the restoration of the Chinese feudal ethics system in China through a character of Chinese and Japanese mixed blood named “Watonai” rather than a Japanese pure bloodline. In the 17th century East Asia, the collapse of Ming Dynasty brought about the failure of a traditional Chinese world, which resulted in the appearance of each ethnic group’s idiosyncratic custom. It can be safely assumed that Chikamatsu’s “Cokusenyagassen” managed to portray the establishment of feudal ethical consciousness by the energy of treason and fidelity.


東アジアを舞台にした十七世紀には多様な人物が登場する。日本では鄭成功の父子が反清の勢力のシンボル的な存在になることによって多様な作品が創作されるようになった。その中でも劇作家である近松の作品が注目を集めたのである。近松は『国姓爺合戦』で純粋な日本人よりは和藤內という中国人と日本人の混種的な性格の人物に注目しながら中国で中華の復元という封建的な倫理大系の完成を指向した。十七世紀の東アジアは明王朝の崩壊で中華世界が消滅し、各民族の自らの風俗を強調する競演の場になっていたのである。伝統的な中華の不在の中で夷態を追い出し、新たに中国的なものを回復させようとしたのが『国姓爺合戦』の作品世界である。『国姓爺合戦』で近松が指向したのは混種性に基づいた「反」と「忠」という新しい変革のエネルギの創出と封建的な倫理意識の構築といえよ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