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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ように本稿では, 1903年に訪日した載振ㆍ那桐ㆍブレドンらの清国訪問団による金融制度の創設に関する質問, 及びそれに対する大蔵省側の対応について考察を行ってきた. 以上の分析からわかるように, 訪問団が金融制度の調査に力を入れたという一般論はもちろん, 調査内容の具体化までもはっきりされていた. 清国の質問した側は二通りあるのが判明され, 中国における金融制度の改正について, それぞれの関心をもとに発問している. その一は, 戸部側(瑞豊ㆍ張允言)が国内の新制度立ち上げに念を入れ, 意識的に日本経験を求めながら質問の捻出を試み, 主に中央銀行の設置, 兌換券の発行や整理, 公債の募集という点から明らかに見られる. その二は, 海関側(ブレドン)の関心に将来の新制度と清国以外の既存制度とのつながりを強めるという側面が見られる. 例えば, 本位貨幣の量目に関して, 戸部側は庫平両を前提に話しを進めてみようとしているが, 海関側に対し, 質問された側の回答からみれば, アメリカㆍ日本の量目を考慮しながら規定すべきだと推薦されている. では, こうした二通りの関心の原点はどこにあったのか. おそらく, 戸部側のほうは, 同時期の日本を模範にしようとした「新政」において国づくりの一端として考えられているではなかろう. 結果の一つとして, 翌年の1904年には, 訪問団のメンバーであった張允言が戸部銀行(北京)ㆍ造幣局(天津)の設立準備を主導し, さらに1905年に開業された中央銀行たる戸部銀行(後, 大清銀行と改称)の初任総監督を担当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この一連の件において, 清朝政府が日本での調査結果(中央銀行に関して)を活用した可能性は否定できないであろう. ただし, それらの関連性については, 更なる実証が必要である. その一方, 海関側のほうは, 清国における対外貿易の更なる拡大に狙い, 当該期の金本位制の下での貿易体制において円滑に展開するための新たな金融制度を作り出す可能性が見出されたことが窺えよう. よって, 本稿で取り上げた1903年清国の訪問団の言動であろうと, 冒頭に触れたジェンクス博士による幣制改革の意見であろうと, 実際は中国が近代国家の建設を模索しながら金本位制のグロバール化という潮流に乗ようとする試みとして見なされてもよい. こうして, 近代中国金融制度の再編成については世界史の流れに置かれて検討すべきではないかと, この件に関する分析を通して再度確信された. そこで, 海関側の言動の重要性にかんがみて, 筆者は1903年のこの訪問に「ブレドン」を加え, 「載振ㆍ那桐ㆍブレドンらの日本訪問」と名づけることを提案する.


Zai Zhen, Na Tong, Robert Bredon and Others'Visit to Japan in 1903: An Investigation on Japanese Financial System, The Archives of the MOFA of Japan


이 논문은 1903년에 일본을 방문한 재진(載振)ㆍ나동(那桐)ㆍ브레든 등 청국방문단(清国訪問団)에 의한 금융제도의 창성에 관한 질문 및 그에 대한 일본 대장성(大蔵省) 측의 대응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이 방문단이 금융제도의 조사에 주력했다고 하는 일반론은 물론, 조사 내용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규명하였다. 청은 중국에서 금융제도의 개정에 관한 관심에 근거하여 두가지 질문을 하였다. 첫째, 호부측(瑞豊ㆍ張允言)은 국내의 새로운 제도 출범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일본의 경험을 질의하였는데, 주도 중앙은행의 설치, 태환권의 발행이나 정리, 공채의 모집 등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둘째, 해관측(브레든)의 관심의 관심에는 장차 새로운 제도와 청의 기타 제도와의 연계를 강화한다는 측면이 있어서, 예컨대, 본위화폐의 양에 관한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고려하면서 규정할 것을 추천하였다. 호부측에서는 일본을 모범으로 삼고 시행하고 있던 「신정」 차원에서 고려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듬해인 1904년에 방문단의 구성원이었던 장윤언(張允言)이 호부은행(戸部銀行, 北京)ㆍ조폐국(造幣局, 天津) 설립 준비를 주도하였고, 또 1905년에 설립된 중앙은행인 호부은행(뒤에 대청은행으로 개칭)의 초대 총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 일련의 사례를 보면 청 정부가 일본에서의 조사결과를 활용하였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사례들의 관련성에 관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한편, 해관측에서는 청에서 대외무역의 추가 확대를 지향하면서, 당시 금본위제하의 무역체제에서 원활히 운용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제도를 만들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 거론한 1903년 방문단의 언동이나, 젠크스 박사에 의한 화폐 개혁 의견이나 모두 실제로는 중국이 근대국가의 건설을 모색하면서 금본위제의 글로벌화라는 흐름에 편승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근대 중국 금융제도의 재편성에 관해서는 세계사의 흐름에 두고 검토해야 함을 이 분석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해관측의 언동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필자는 1903년 방문에 브레든을 추가하여, 「재진ㆍ나동ㆍ브레든의 일본 방문」이라 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