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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묵자와 박은식의 평등과 평화 및 대동의 정신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회사상을 비교 고찰한 것이다. 묵자는 周왕조가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列國이 서로 다투어 천하가 요동치던 춘추말기에서 戰國 초기의 불안한 시대를 살았으며, 박은식은 조선조 말기의 격동하던 시기와 일제 침략으로 우리나라가 식민지배를 받는 역사적 혼란기에 살았다. 두 사람은 시간적으로는 2천 수백년 떨어져 있었지만 시대적 변혁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救世의 사회사상은 공통성을 보인다. 묵자와 박은식은 모두 儒學을 배웠으나 유학의 繁文縟禮의 형식주의와 귀족중심에서 벗어나 실용적이며 민중중심의 사상으로 혁신할 것을 주장했다. 묵자는 ‘述而且作’의 진보적인 정신으로 墨學을 創立했으며, 박은식은 朱子學을 비판하고 陽明學의 활용을 주장하였다. 묵자와 박은식은 각각 兼愛主義와 良知를 바탕으로 평등과 평화가 실현되는 大同의 理想을 목표로 실천했다. 묵자는 인격의 평등을 바탕으로 정치적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의 정치참여를 강조하고 있으나, 박은식은 인종의 차별이 없는 세계평등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묵자는 평생 학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전쟁방지에 주력했다. 그는 침략에 대비하여 군사무기를 개발하고 독창적인 방어의 전략과 전술을 고안했다. 박은식은 초기에는 文弱을 비판하고 崇武 정신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 후에는 正義와 人道정신을 내세워 비폭력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을 주장했다. 묵자가 이상사회로 생각하는 兼愛의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兼相愛 交相利’의 公共性을 추구하는 점에서 ‘天下爲公’을 전제로 하는 「禮記」 「禮運」의 大同사회와 일치 한다. 박은식의 大同의 이념은 세계평화를 내세우긴 하지만 尊我國主義가 주창되는 애국계몽운동의 형태로 전개된 것이 묵자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사람의 사회사상의 방법론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혁신을 전제로 종교를 功利的으로 활용하고 민중의 편에서 救世의 실천정신을 발휘한 점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묵자와 박은식의 사상적인 공통성의 근저에는 박은식이 梁啓超를 매개로 묵자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墨子は、周王朝の權威が失なわれ、列國が互いに争い、天下の搖動されていた春秋末期から戰國初期までの不安な時代に生きていた。朴殷植は、朝鮮朝末期の激動な時期で、日帝 侵略の韓国植民支配時代の歷史的な混亂期に住んでいた。二人は、時間的に、2千數百年余隔てているが、時代的な變革の要求に對應すべき救世の社會思想に於いては、共通性を見せていた。墨子と朴殷植とは、両方とも儒學を学んでいた。が、共に儒學の繁文縟禮の形式主義と貴族中心とからは離れて、實用的で民衆中心の思想として革新すべきことを主張していた。墨子は、「述而且作」の進步的な精神から墨學を創立した。一方、朴殷植は、朱子學を批判し、陽明學の活用を主張した。墨子と朴殷植とは、各々兼愛主義と良知を根本にして、平等と平和が實現される大同の理想を目標にして實踐していた。墨子は、人格の平等を本にして政治的な平等を强調し、民衆の政治參與を强調していたが、朴殷植は、人種の差別のない世界平等を通じて韓國の獨立を訴えた。また、墨子は、生涯學術的でありながら、かつ實踐的に戰爭防止に主力した。彼の獨創的な倫理槪念である兼愛は、積極的な平和論であった。それから、墨子は、侵略に對備して軍師武器を開發し、獨創的な防禦の戰略と戰術とをも考案した。一方、朴殷植は、初期は、文弱を批判し、崇武精神にして平和を維持せねばならないと言ったが、その後は、正義と人道精神とを掲げて非暴力な平和の道を摸索すべきであることを主張した。墨子の理想社會として考える兼愛の社會は、社會的な弱者を配慮し、「兼相愛交相利」の公共性を追求する点では、「天下爲公」を前提にする『禮記』「禮運」の大同社會と一致する。しかし、墨子の兼愛は、普遍性ある世界平和を主張したのに対し、朴殷植の大同の理念は、世界平和を掲げてはいるが、尊我國主義の主唱される愛國啓蒙運動の形態に展開され、ここが、墨子とは違うところであ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