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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我々は、北海道における最初の旧石器文化の発掘から、既に半世紀以上の歳月が経過したことを、おもいうかべる。しかし、我々の研究は、未だに途上である。今日までに、我々は、この地方で、原人と旧人に関する痕跡を、全く発見していない。我々は、更新世終末の時代に、ホモ・サピエンス(Homo sapiens sapiens)が、南極大陸を除く全ての大陸を制覇したことを、知っている。そして、彼等は、同じ時代に、アジア大陸から北海道へ、北方に出現した干上がった浅瀬を通って、この島へ到達した。最初の到達時期は、現在より20,000年前をやや上回る年代である。我々は、それを遙かに超えるような事実を確認していない。しかし、これら最初の住人は、彼等の活動の痕跡を、この島中に驚異的なほど沢山残した。北海道における先史学的研究は、年代測定や編年学上に関わる自然科学分野の証拠が少ない。これは、深刻な制限がある。しかし、火山灰の編年学は、唯一大き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取り分け、北海道中央部の恵庭火山の噴火は、極めて重要な指標である。この火山は、降下火山灰(En-a)を、大量に噴出し、広い範囲を覆い尽くした。この堆積された火山灰層は、編年学の上で、古いインダストリーとより新しいインダストリーの識別に、大きな役割を演じる。この後期旧石器文化の多くのインダストリーは、島内の黒曜石と最寄りの硬質頁岩を、主な材料として用いた。黒曜石は、島内の異なった地方に由来するが、4つの主だった露頭が良く知られている。この岩石は、大量に採掘され、そして各地へ運搬された。この岩石は、世界の多くの例と同じく、取り分け、先史時代の人類に、求められ、よく活用された。その中で特に、白滝の露頭は、北海道の北部に位置し、とても重要であった。白滝産の黒曜石は、少なくとも直径700kmのセグメント内で、数多く発見される。それは、北海道の領域を覆い、そして更にこの島以外へも流通した。この事実は、島内の各地の異なった人類集団の間に、道具製作上の重要な交易資材として流通した。この時代において、北海道における人類の活動は、まったく孤立していなかった明確な一つの証拠である。北海道の先史学者は、異なった8つのマイクロ・ブレイド生産の技術的プロセスを識別さした。それらの内の幾つかの技術的プロセスは、特定の狭い地域にのみ限定された。あるいは反対に、他の技術的プロセスは、広くアジア大陸の人類グループと関連することが証明されている。現時点で、我々の研究は、後期旧石器文化の全体を把握し、そして地域的に完結した編年システムを、未だに確立していない。この地域の最も古いインダストリーは、最初から後期旧石器文化の典型的石器を組成し、そしてブレイド及びマイクロ・ブレイドの生産技術を伴っていた。その特徴は、柏台I遺跡が最も優れた例である。この遺跡は、恵庭火山テフラの堆積より古い時期に相当する。それは、Wurm氷期の後半における最も寒冷な時期に位置する。つづく、第二段階は、この火山テフラより新しい後続のインダストリーである。それは、オサツ16遺跡等が典型的な例としてあげられる。第三の段階は、後期旧石器文化の終末期におけるインダストリーである。それは同時に、縄文文化の黎明に位置する。この文化様相の特徴は、土器が出現し、所謂“Sub-néolithic-Culture"と呼ばれる、過渡的な文化段階である。しかし、それは、依然として後期旧石器文化の伝統を色濃く保持している。我々は、この最後の様相が相対的に短期間の内に、連続しながら発展的に経過したことを確認できる。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처음 구석기 문화가 발견된 지 이미 반세기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기문화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아직까지 홋카이도에서의 학술연구는 원인(原人, archanthropien)이나 구인(舊人, paleanthropien)에 관한 궤적이 발견되고 있지 않다. 갱신세 말에 이르러 신인(新人, neanthropien)들은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제패하였으며, 홋카이도 북방에 출현한 육로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이 지방으로 도달하였다. 그들이 처음으로 도달한 시기는 약 20,000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방대한 양의 활동 흔적을 남겼다. 홋카이도의 선사학 연구는 연대측정 및 편년연구를 비롯한 자연과학분야 면에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제한이 있는데, 테프라 편년연구가 유일하게 큰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도 홋카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에니와(恵庭)화산의 광역테프라(En-a)는 편년연구 상에서 시기가 앞서는 석기 공작과 그보다 늦은 시기의 석기 공작 간의 상호 관계를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홋카이도 후기구석기문화의 석기 공작은 대부분 재지 흑요석과 함께 경질 혈암을 중심으로 석기제작에 이용되었다. 재지 흑요석은 주로 4가지의 산지・노두에서 채집되었으며, 특히 북부 시라타키(白滝)의 노두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시라타키산 흑요석은 적어도 직경 700㎞ 권의 북해도 내외에 반출되어 유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각지에서 다른 인류 집단 간에 대해 도구 제작 상의 중요한 교역재료로서 유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당시 홋카이도의 인류 활동이 고립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8개의 세석인 박리기술이 발달하였다. 어떤 기술은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활용된 반면, 널리 아시아대륙의 인류그룹과 깊이 관련되는 기술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후기 구석기 복합문화(civilisations paléolithiques)의 총체에 부합되는 연구, 혹은 지역적으로 완성된 편년연구가 성립되고 있지 않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군은 후기구석기문화 전형의 석기조성(outillage)과 석인 및 세석인 박리기술로 구성되며, 카시와다이(柏台) I 유적 등의 출토사례로 증명할 수 있다. 이는 에니와화산의 광역테프라(En-a)보다 더 오래된 최종 빙하기후반의 최한랭기에 해당한다. 제 2단계는 En-a층보다 새로운 후속 석기 공작으로, 오사츠 16 유적 등을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제 3단계는 홋카이도 후기 구석기 문화 말기에 속하는 석기군 양상이며, 동시에 죠몽(縄文)문화의 여명기에 해당된다. 이 양상에서는 토기의 존재, 그리고 후기 구석기 문화 전통과 죠몽문화 복합[소위, 아신석기문화(亜新石器文化), “Sub-néolithique”)의 과도적인 석기문화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마지막 양상이 단기간에 발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