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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unciant monks during the Buddha's lifetime were prohibited from farming, running a business, and conducting all kinds of productive labor and economic activities. But as Mahayana Buddhism rose in India, the system of attaining profit from interest by way of loaning some money inside the Buddhist order was set up, and it functioned like a sort of a banking organ. As is shown in this system, the tradition of sangha's accepting economic activities has been passed down through Chinese Buddhism to our country's Buddhist orders. So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in the Unified Silla period, temple farmland offered by the nation or the royal family was formed, and temple slaves’ labor forces were needed. In the Goryeo Dynasty, as the Buddhist community gathered strong forces through colluding with government powers, it greatly expanded the size of temple farmland. They also made an attempt to increase wealth by way of not only producing and selling liquor, garlic, cloth, and celadon but also running “bo” (寶: monastic fund). The construction of luxurious monasteries was continued, state coffers were wasted because of all sorts of Dharma meetings, and people suffered from hard labor. As various harmful effects became evident as temples were attached to increasing their wealth and failed at sufficiently returning accumulated riches to society, monks were on the verge of being forbidden from doing their work by the proclamation of a ban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excessive expansion of the monastic economy in th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brought the policy of suppression of Buddhism and respect for Confucianism in the Joseon Dynasty. Entering the Joseon Dynasty, the policy of suppressing and excluding Buddhism was in earnest. Temple farmland was confiscated, and temple slaves were enlisted into the army. Furthermore, Buddhist orders were merged, the number of temples was reduced, and monks had to tolerate the extortion of taxes by sadaebu (aristocrats). Meanwhile, monks made their best endeavors to secure sources of revenue for the purpose of managing and maintaining their temple. They begged for food, cultivated farmland, made and sold paper and yeast, and even worked for w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y also sought joint measures to save themselves by organizing all sorts of gye (契; fraternity). While this kind of tradition of monks’ engaging in direct economic activities has been almost abandoned, monks handle and manage money in person. Temple finance mostly relies on the offerings and donations by lay Buddhists or the income from admission fees. But the pure wealth on the basis of revering the Three Treasures is not administered transparently and reasonably, and temple income is not distributed to all of the renunciant monks properly and equally either. Because of this, shameful things frequently occur. Such evil customs should be stamped out and replaced by improved practices.

석존 당시의 출가자들에게는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가꾸는 농삿일이라든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삿일 등, 일체의 생산노동과 경제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정사(vihāra)를 건립하고 관리하는 등의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에는, 절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로 출가자들을 받들고 돕는 공인된 재가불자인 정인(淨人)을 통해 돈이나 귀금속을 취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불멸(佛滅) 이후 교단의 분열이 확산되면서, 불교교단 내에 대여를 통해 이자 수익을 올리는 ‘탑물무진(塔物無盡)’ 제도가 성립하여 일종의 금융기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탑물무진 제도에도 나타나듯 경제활동을 승가에 수용한 전통은 중국불교를 거쳐 우리나라 불교 교단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하여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국가나 왕실의 사급(賜給)에 의한 사원전(寺院田)이 형성되었으며 사원노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는 국가권력과 결탁되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사원전의 규모를 크게 확장시켰다. 술과 마늘, 옷감과 청자 등의 많은 물품을 만들어 판매함은 물론 보(寶)를 운영함으로써 재산의 증식을 꾀하기도 하였다. 호화로운 사원 건립이 끊이지 않고 갖가지 법회로 국고는 낭비되었으며 백성은 노역에 시달렸다. 사찰이 재화의 증식에 집착하고 축적된 부를 사회에 충분히 환원하지 못함으로써 여러 폐해가 드러나자 고려 말엽에는 승려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금령(禁令)이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고려시대 사원경제의 과다한 팽창은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을 자초하게 된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불교에 대한 억압과 배척은 본격화된다. 사원전이 몰수되고 사원노비는 군정(軍丁)에 충당된다. 뿐만 아니라 불교 종단은 통폐합되고 사찰은 감축되며 스님들은 사대부들의 가렴주구를 견뎌야 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스님들은 사찰의 관리와 유지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스님들은 탁발을 하고 전지를 개간하였으며, 짚신과 미투리, 종이와 누룩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품팔이까지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각종 계(契)를 조직하여 공동의 자구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오늘 날의 한국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스님들의 직접적인 경제활동의 전통은 대부분 단절된 반면, 스님들이 돈을 직접 만지고 관리한다. 사찰의 재정은 대부분 재가불자들의 보시와 시주, 또는 입장료 수입 등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삼보(三寶)의 정재(淨財)는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으며, 사찰의 수입이 출가자 모두에게 적절하고 공평하게 분배되지도 않고 있다. 그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폐습은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는 초기불교의 경우와는 달리 출가자들의 생산노동과 경제활동을 인정하고 수용하였으며 부의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백용성 스님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은 그 한 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한국불교 교단은 초기불교의 ‘출가-재가’ 이원 구조에 바탕한 역할 분담을 통해, 출가자는 수행과 전법교화에 매진하고 재가자는 사찰 재정 운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사원경제가 투명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때, 불교의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