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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느 질송이 ‘탈출기의 형이상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나는 있는 나다”(Ego sum qui sum, 탈출 3,14)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석은 존재 자체를 탐구하는 존재론적 측면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피조물과 하느님 사이의 근원적 구분을 드러내는 ‘영원-시간’이라는 존재 양식을 표현하는 ‘Est’와 ’fuit et erit‘이라는 구도를 통해 ‘있었다’가 인간적 피조물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있다’는 신적 본성을 언급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느님 실체의 이름이 ‘Est’라는 것은 ‘변화-불변’ 그리고 ‘존재-비존재’의 구도로 나타난다. 참된 존재는 불변의 방식으로 있으며 그러한 실존은 오직 하느님의 것인 반면,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를 받았기에 창조주와 비교할 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피조물이 지닌 가변성의 기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불변하신 하느님에 의한 ‘무로부터의 창조’이며, 다른 하나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피조물에게 최고 존재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존재자체-분여된 존재’라는 관계는 ‘최고선-분여된 선’이라는 구도로 제시된다. 따라서 ‘척도-형상-질서’로 표현되는 피조물의 존재론적 삼중 구조는 존재자체로의 회귀(回歸)라는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이 회귀는 ‘존재-비존재’의 구도 안에서 표현된다. 하느님을 알수록 인간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분에게서 벗어날수록 비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존재자체로의 회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제시한다. ‘가변적 인간이 불변하고 영원한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지성적 한계 때문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제시한다(탈출 3,15). 더욱이 이 이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멸하는 조건에 놓인 인간이 존재자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분’이 내려오신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는 우리가 존재자체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렇기에 신앙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토록 신앙에 대한 강조는 ‘나는 있는 나다’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형이상학적 이해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론’임을 드러낸다. 바로 여기에서 ‘탈출기의 형이상학’은 순수 자연적 사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성경의 사상에 철학적 표현을 제공하고자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지를 나타낸다.


St. Augustine’s exegesis of “Ego sum qui sum”(Ex 3,14), in which Etienne Gilson claimed that “the metaphysics of the Exodus” could be found, reveals an ontological implication of the text, that is, Ipsum Esse. The bishop of Hippo insists that the expression “was being” should be applied to human creatures while “is being” referred to the divine nature, using the scheme of “Est” and “fuit et erit”, which shows two modes of being: eternity and time. It also corresponds to the fundamental distinction between God and creature. The name of divine substance is “Est” and it leads to the frame of “mutability and immutability” and “being and non-being.” The true being exists in the state of immutability and such a mode of existence belongs only to God. However compared with God, creature is not because it is a being only given by Him. The mutability of creature in the flow of time is based on these two aspects: the immutable God created all creatures ex nihilo, but nonetheless He does not give them the supreme being. The relation between Ipsum Esse and esse participatum corresponds to that of Summum Bonum and bonum participatum. Hence, a creature has an ontological threefold structure “measure, form and order” and it presents a new metaphysical dynamic: regression to Ipsum Esse. This regression is demonstrated in the frame of “being and non-being.” The more deeply a human being knows God, the more he is, while the more he is away from Him, the less he is. Another question arises when we consider the regression to Ipsum Esse by human will: can a mutable human ever understand the immutable and eternal God? In reality, we could not perceive God in Himself. Due to this limitedness of human intellect, God reveals Himself in another name: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This name also implies God the Immanuel. He who He is descended from heaven because the human intellect, confined in the condition of mortality, could not grasp the Ipsum Esse. Christ, therefore, is the only way to Ipsum Esse and so the faith in Him is an essential key to the way. In this respect, Augustine’s metaphysical exegesis of “Ego sum qui sum” could be understood as an ontological step toward God. Accordingly, “the metaphysics of the Exodus” is not merely a natural philosophical speculation, but a philosophical expression of biblical thought in its fundamental dimen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