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우치무라 간조의 사회개혁사상은 초기에 사회주의와 일치되는 지향점을 찾기도 했지만 점점 사회주의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는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그의 사회개혁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재림사상으로, 나아가 재림운동으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그런 간조의 행보는 그의 생전은 물론,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20년, 30년이 지나도 일부계층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일본사회의 공감을 부르지 못했다. 그 사실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언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일본사람이 종교의 필요를 인정하기까지 50년 걸렸다. 그들이 기독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기까지 50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외국선교사가 전하는 기독교가 아닌, 일본국에서 자생한 기독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기까지는 또 50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주장이 인정받기까지는 빨라도 지금부터 백년 뒤의 일이다. 내 뼈가 무덤 속에서 썩을 무렵, 나는 내가 소원하는 일본인의 각성을 보게 될 것이다. (「백년 뒤(百年の後)」, 1914.2, 『성서지연구』, 전집20, 249쪽)생전에 사회는 물론, 제자들로부터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그가 처한 입장을 인용문이 대변해 준다. 간조의 사회개혁사상과 사회주의와의 넘을 수 없는 차이점, 및 재림운동과의 관련 등은 차후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기에 본고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While beginning his employment at the newspaper "Yorozu choho", Uchimura Kanzo mainly presented editorials dealing with domestic and foreign current affairs. Thereafter, carrying on movements against the keeping of concubines and against pollution from the Ashio copper mine, etc., he did try to make direct attempts at social reform, but his editorial activities were still his main means of social reform. Especially through "Tokyo dokuritsu zasshi" and "Seisho no kenkyu", both of which he himself founded, he gradually came to strongly put forth his desire for social reform based on study of the Bible. Since his death, several scholars who have analyzed Uchimura’s unique social reform have discussed the unique elements of his thought. Dohi Akio’s "Nigenron" [Dualism] and Shibuya Hiroshi’s "Enshinteki shakai kairyoho"[Centrifugal Social Reform Method] are representative works. While the two put forth opposing views, it seems that neither can on their own explain Uchimura’s thought. In conclusion, Uchimura’s social reformist thought is a "centrifugal social reform method" predicated upon "dualism". That is to say that while Dohi and Shibuya’s ideas seem at loggerheads, in fact they do explain Uchimura’s thought by acting as completion for each 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