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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여인 결계와 여인결계에 도전한 여성들의 도전사에 대해 조명 해 본다. 특히 오오미네산의 여인금제 사상에 대해 검토하고, 여성들의 결계도전 사건을 중심으로 그 배경과 흐름을 요약․검토함으로써 메이지 이후의 여인결계 변천사의 흐름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오오미네산의 여성금제 도전이 한마디로 여성항쟁의 역사라고 볼 때, 현재도 변함없는 여인금제 성산의 이미지는, 여성의 사음을 제일 꺼리고 있으며 여성을 신앙 수행자라기보다는 신의 영역을 더럽히는 부정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여성금제가 해금되지 않은 근본 사정은 있다. 부정관의 민속학적 고정관념이 불교의 사음관과 습합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여성의 「성」을 부정함으로써 여성 「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깊은 이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 불교계, 내지는 종교계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여인금제 도전사건에 대한 일람표를 작성해 본 결과, 오오미네산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여인금제를 유지하는 희유의 성지이지만, 메이지 이후, 이 산의 여인 결계를 돌파하려고 한 여인들의 도전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메이지 개화기라는 시대배경에 따른 여성들의 의식전환이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여인금제를 확실히 지키려고 하는 신도들에게 여인결계 도전 사건은 종교에 대한 거부행위이며, 오오미네산이라고 하는 종교영역에 대한 파괴 활동이라고도 하겠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이라고 하는 주제를 잘 이해할 경우, 신의 영역에서의 남녀 차별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本稿では、女人結界と女人禁制に挑戰した女性たちの挑戰史について照明してみる。特に、大峰山の女人禁制思想について檢討し、それに挑戰した事件を中心に整理することでその結果として、明治以後の女人結界の變遷史の流れを把握してみようとする。まず、大峰山の女性禁制の挑戰が一言で、女性抗爭の歷史であると考える時、現在にも相変わらず女人禁制が存續する聖山のイメージは、女性の邪淫を一番憚っていたことである。女性を信仰のための修行者という観念よりも、神の領域を穢れる不淨な存在として認識している点が、何よりも今日も女性禁制が解禁されていない根本的理由であろう。そして、女性不淨觀の民俗學的固定觀念が佛敎の邪淫觀と習合される過程で、むしろもっと強く女性の「性」というのを否定していたことがわかる。女性の「性」について真の意味で深く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点に日本仏教係、乃至は宗教界の反省がなければならない。本硏究を通じて、女人禁制に挑戰した女性たちの事件について一覽表にまとめてみると、大峰山は現在までも相変わらず女人禁制を維持する稀有の聖地であるが、明治以後、この山の女人結界を突破しようとした女人たちの挑戦が急激に増えている。これからは日本社會の明治開化期という時代的な背景と絡み合った女性たちの意識の轉換が大きく影響したことがわかる。女性禁制をしっかり守ろうとする信徒たちにおいては、女性結界突破が宗教に対するテロ行為であり、大峰山という宗教施設に対する破壊活動という考えも重要であろうが、宗教が追い求める救援という主題をよく理解する場合、当然神さまの領域での男女差別は決してあってはならないことであろう。そして、今までの女人禁制に対する女性たちの挑戰は、歷史的な流れのなかで、一つ一つの個別的な事件として知られてきたのが殆んどであったけれど、本稿で女人禁制に挑戰した記錄や女人結界の變遷史について、目瞭然に檢討․整理․要約することで、修験道の總本山の大峰山の女性の禁制挑戰の行步という意味上有意な意味を持つことと考えら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