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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학계에서 동일 작가로 잘못 알고 있는 기존 연구의 오류들을 바로 잡고 아동문학가 고한승(高漢承)과 다다이스트 고한용(高漢容)의 생애와 문예 활동을 각각 재구하였다. 두 작가를 동일시한 오류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시문학사, 특히 모더니즘과 다다이즘에 대한 연구에서 다다이스트 고한용을 아동문학가 고한승과 동일 인물로 보았다. 이 문학사적 오류들은 1940년의 임화에서 시작하여 1970〜90년대의 김윤식 이후 여러 연구자들, 2000년대의 요시까와 나기 등 외국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었다. 즉, 후학자들은 선행연구자들의 오류를 의심이나 검증 없이 계속 따른 것이다. 아동문학가 고한승(高漢承)은 고도후(高燾厚)의 첫째 아들로 1902년 8월 27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동화와 소설을 쓸 때, 고한승(高漢承)이라는 본명과 서원(署園)이라는 호를 함께 사용했다. 시와 노래 가사, 희곡 등을 쓸 때는 고마부(高馬夫)라는 필명을 썼고 수필을 쓸 때는 고한승(高漢承)이라는 이름과 함께 포빙(抱氷)이라는 호를 썼다. 그는 해방 직전 ‘송도 항공주식회사’의 사장 역을 맡았다. 해방 후『어린이』를 복간하는 뜻 깊은 일을 했지만,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에 검거되어 친일파로 몰리기도 했다. 1949년 10월 29일에 부산에서 사망하였다. 다다이스트 고한용(高漢容)은 고석후(高錫厚)의 둘째 아들로 1903년 7월 23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고따따이다. 그는 일본유학 중 다다이즘을 알게 되어 일본의 다다이스트를 초대하는 등 한국에 다다이즘을 최초로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결혼 후, 집필활동을 중단하고 가정과 기업 경영에 힘을 쓰며, 책임 있는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았다. 1983년 10월 23일에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이렇듯이 아동문학가 고한승과 다다이스트 고한용은 전혀 다른 작가다.


This paper investigates and reconstitutes the lives and literary activities of Han-Seung Ko, a children's book writer, and Han-Yong Ko, a dadaist, who were mistakenly identified as the same author in the previous studies. The mistake has persisted since Korean liberation up until now. It is in the history of poetry, particularly in the studies of modernism and dadaism, that the two authors have been regarded as the same person. Since Hwa Im initiated the flawed history in 1940, Yoon-Sik Kim and other Korean writers reproduced it throughout 1970s and 1990s. And more recently, even foreign writers such as Yosikawa Nagi has repeated the same mistake. This shows dramatically how mistakes made in preceding studies are followed blindly by younger generations, without any positive efforts to verify the truth. Han-Seung Ko, a children's book writer, was born in Gae-Sung as the first son of Do-Hoo Ko in 27 August 1902. He used his own name Han-Seung Ko and a pseudonym Seowon when writing fairy tales and novels; a pen name Komabu when writing poems and dramas; and another pseudonym Pobing when writing essays. He was the former president of 'Song-Do Aviation Company' just before Korean liberation. But soon after liberation, he was accused of a pro-Japanese collaborator by the special committee to investigate anti-national acts, although having made at the same time an invaluable contribution to the history of literature by reviving the publication of 『Euh-rin-i』(Children). He died in Busan, 29 October 1949. Han-Yong Ko, a dadaist, was born in Gae-Sung as the second son of Seok-Hoo Ko in 23 July 1903. He wrote under a pen name of Kodada. He came to be familiar with Dadaism while studying in Japan; invited some Japanese dadaists to Korea, and contributed in this way to the first introduction of Dadaism to Korean literature. Since his marriage, he stopped writing and devoted himself to the ordinary life of a business man as well as a responsible husband. He died in Seoul, 23 October 1983. As it shows, Han-Seung Ko and Han-Yong Ko are completely different auth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