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화여자전문학교(이하 이화여전) 음악과는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정부의인가를 받은 유일한 전문음악교육기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한국근대 양악사 연구에서는 그 위상에 합당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근대 양악사가 한국 땅에서 한국인에 의해이루어진 음악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는 이화여전음악과를 연구 대상으로 상정함으로써, 한국과 한국인의 테두리를 뛰어넘는한국 근대 양악사 서술을 제안한다. 이화여전은 식민지 시기 미국인 선교사에의해 운영된 교육기관이기에, 미국 및 일본의 근대(음악)사와 맥락을 같이하기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이화여전과 선교사가 펴낸 1차 자료를 중심으로 이화여전음악과가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어떤 성격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는가를검토할 것이다. 당시 이화여전 음악과에서는 미국계 교육이 실시되었고, 피아노 교육이 중심에 놓였으며, 음악중등교원이 배출되었다. 다음으로 이화여전음악과와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논점들이 다루어져야 하는가를 제안함으로써,이화여전의 음악교육이 정치・문화적 제국주의의 맥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Although Music Department at Ewha College was the only registered music institution in college level in the colonial Korea, it has been sparsely discussed as a part of Korean modern music history. The lack of discussion regarding Ewha Music Department seems to be derived from the narrow scope of music historiography, which was confined to the musical activities only by Korean, and held in Korea. Investigating the musical activities of Music Department at Ewha College, I attempt to broaden the scope of previously written Korean modern music history: As Ewha College was an institution governed by American missionarie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music education there was strongly involved with the (context of) American and Japanese modern music history. I trace how Music Department at Ewha College constructed its own characteristics within Korean society in these complex circumstances, by reviewing the materials published by Ewha College and documents left by missionaries. Shedding light on the neglected part of Korean modern music history, I argue that the music education at Ewha College was closely related to political and cultural coloni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