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논문은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첫째, 淸虛 休靜(1520-1604)의 沙門像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승려가 칼과 창을 쥐고 적군을 살상하는 행위는 승려 본본사와 맞지 않는다. 특히 조선불교 최고의 禪僧으로 평가되는 휴정이 앞장서 승군을 조직하고 戰場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그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휴정 당대에도 승단 일부에서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휴정의 승군 활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승병장 휴정’이 아니라, 오히려 ‘사문 휴정’의 면모를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는 주로 『청허집』에 실려 있는 내용을 통해 ‘사문 휴정’의 면모를 나름대로 서술해보고자 하였다. 둘째, 휴정을 추념하는 국가 차원의 사업, 특히 해남 표충사 건립과 그곳에서의 祭享 봉행이 지니고 있는 의의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서산 衣鉢이 전래된 이래 대흥사는 이른바 ‘西山佛敎’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대흥사는 스스로 宗院의 위상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조선후기 불교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하였으며, 표충사 건립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성과물이었다. 해남 표충사는 戒洪과 天默 등이 주도하여 건립하였는데, 이들은 그야말로 발이 ‘부르트도록’(繭足)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으나 오랫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표충사는 당시 戶部尙書였던 徐有隣(1738-1802)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건립될 수 있었다. 최근 대흥사에서 공개된 자료 「賜額祭文」과 「享禮笏記」는 표충사 건립 과정과 표충사에서 행해진 제향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본문에서는 이들 자료 전체 내용을 소개하면서 표충사 제향에 담겨 있는 의의를 서술해보고자 하였다. 밀양 표충사(1738년), 해남 표충사(1788년), 묘향산 酬忠祠(1794년) 등의 공식 賜額祠宇가 건립된 것은 임란 시기로부터 150-200여 년이나 흐른 뒤였다. 막대한 의승군의 희생과 戰功에 비해 의승장을 배향하는 사우를 건립하는 일이라든가, 그 운영비용을 조정에서 충당하는 것은 ‘사소한 배려’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승단은 그 사소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마치 고행에 버금가는 과정을 겪어야했다. 이같은 내용을 통해 우리는 조선후기 불교사의 또 다른 단면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was aimed to investigate Cheong Heo Hue Jung’s (1520-1604) Samunsang. As a Buddhist monk, Hue Jung took part in wars and combated with a sword or a spear in killing people, which is in contrast to Buddhist teachings. At the time, he was one of the most respectable Buddhist monks hence, his role in recruiting monks and leading them to war seemed very provocative. His warrior activity drew speculation from his peers during his life. To understand and assess his warrior activity, it is important to have much insight into his life as a Buddhist monk. The content of Cheong Heo Jib was analyzed for detailed information on Hue Jung’s religious life. This study also intended to investigate the rituals, which are currently performed to worship Hue Jung, at the governmental level. In particular, the meaning of the worship ritual conducted at the Pyochung Shrine, located in Haenam, was analyzed along with the historical background on how the Shrine was founded in the first place. Daehung temple became one of the core Buddhist temples in the late Chosun Dynasty as it was preserving certain personal belongs of Hue Jung, including clothing. The temple’s leading position led to the foundation of Pyochung Shrine. However, the construction of this new shrine was not easy in the beginning, although two Buddhist monks, Kyehong and Cheonmuk, made every effort to build the shrine for a long period of time. Pyochung Shrine was completed with the help of Seo Yu-rin, a government official (1738-1802). Antique books, Saaekjemun and Hyangrae-holki, released by Daehung temple, recently have proved to be helpful in understanding how Pyochung Shrine came to exist and why worship rituals was performed at the shrine. The content of these books was addressed in this study. All official Saaek temples, including Pyochung Shrine in Milyang (founded in 1738), Pyochung Shrine in Haenam (1788) and Soojung Shrine in Myohyang mountain (1794), were built almost two centuries later following the national war in the 1590s, known as the Imjin War. That is, building shrines in order to cherish monk soldiers’ enormous sacrifice took a long period of time. Moreover, the Buddhist Monk Association, established during late Chosun Dynasty, went through highly tough times to have those shrines established because resources were not available from the government. Thus, this study has discovered the sad history of hardship faced by Buddhist monks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