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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 이광수의 문학 중에서 기행문에 나타난 식민지 지식인의 인식 구조와 여행의 여정에서 발견되는 역사의 기억을 통해 나타나는 민족 담론의 양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의 기행문은 각 시대별 식민주의 정책을 전유하면서 민족 담론을 형성하였다. 1910년대 해외 기행문에서 이광수는 문명을 통한 제국의 식민화 논리의 이중성을 제시하고, 문명을 흡수하는 상해의 중국인들이 제국의 질서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양가성의 순간을 포착한다.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위상에 감탄하는 식민지적 무의식과 야만적인 조선을 비판하는 식민주의적 의식이 동시에 드러나기도 하고, 당대 제국의 식민주의자들의 이중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1920년대 기행문에서는 민족의 공통된 역사적 ‘기억’을 끄집어내어 사라져가는 민족정체성을 구성하고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복원하기도 한다. ‘궁예’와 망국에 대한 비분강개를 보여준 ‘마의태자’의 역사를 현재의 조선 상황에서 재구성하여 대중을 인식시킨다. 한편으로는 조국강산의 자연에 대한 실용적 인식을 드러내는데, 이는 ‘일생의 진로’였던 지도자의 삶과 연관되는 것이다. 1920년대 조선인의 문화와 생활, 민족성 위에 형성된 이광수의 기행문의 민족 담론은 여정에서 만난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통해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당대 문화정책의 모순성과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1930년대 순례로서의 기행문에서는 이순신의 위패를 관우의 사당에 모신 사대사상을 비판하면서 역사 보존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평양의 단군릉을 민족의 시조이자 기원으로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여정에서 발견한 역사의 기억을 ‘역사 내러티브’로 구성하여 조선인의 집단기억을 생생하게 전파하고자 한다. 역사 내러티브는 언어로 이야기된 집단기억의 표상으로 당대 민족 담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번제를 올리는 제사장’으로서, ‘일생의 진로’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서 시작된 기행문은 조선의 국토에서 조선인의 삶과 공통된 역사와 기억을 통해 민족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 식민지 주체의 민족 복원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었다.


This paper clarifies the aspect of the nation discussion through the memory of the awareness structure of the colony intellectual shown up in the travel essay and history. In 1910's, <in Shanghai>(상해서) and <in Vladivostok>(해삼위로서), that is his travel essay, show the ambivalence of the dual recognition of the colony intellectual and civilization discussion well. The nation discussion faced up to the duality of the civilization and read the possibility of the colony humanity and justice rollover. In 1920's, as to his travel essay, there is <the Kumkang Mountains yuki>(금강산유기) and <choehangrock>(초향록). These works have the colonialism culture to and try to restore the nation through the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His culture discussion tries to uplift the nation for the common memory. And the practical awareness about the nature shows the route of his life. There is the relation with the nation discussion. For the public, the main body was and it remodelled into the then social system and contradiction and tried to form the nation of culture discussion of the korea. In 1930's, his travel essay has the purport of the account of travels as the pilgrimage. And it has the function as the narrative reconstructing the history. There is <chungmugong visiting the relics>(충무공유적순례) and <dangunreung>(단군릉) for the 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