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는 현대일본 사회에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동시에, 전후일본 정치체제 내에서 비주류로 머무르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시하라는 『태양의 계절』을 통해 보여주었던 기성 제도에 대한 저항적 자세의 이미지를 정치활동 내내 유지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지속시켰다. 이시하라의 이러한 저항적 자세는 그가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제도정치권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연결된다. 배타적 자국중심적 정치적 사고의 남성주의적 성향을 지닌 이시하라가 일본 사회에 수용되는 것은 일본의 많은 대중들이 기성 질서의 파괴에 대해 암묵적 지지를 하고 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하라는 자기표현이 힘든 일본 사회에서 이러한 남성주의적 자기표현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성 질서 파괴의 성향은 이시하라가 이단아적 성향으로 손쉽게 얻어낸 대중의 지지를 본인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던 정치적 성공으로 전환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While Ishihara Shintaro has maintained popularity as an icon of the Japanese conservatism among the masses in contemporary Japan, he was unable to fulfill his political ambition to gain the governing power in the postwar political system. He, as a writer and politician, has successfully sustained his popularity, keeping his image of resistance to the established system. The main characteristic of his resistant stance is the unrestrained self-expression on his admiration for masculinity. Ishihara’s popularity originates from the Japanese masses’ catharsis on his self-expression. Since it is difficult for the ordinary Japanese to express their own desires, Ishihara’s unrestrained self-expression and desire to destroy the established system has given a feeling of pseudo satisfaction to the Japanese masses. However, his excessive criticism on the established system has become the core factor of his marginal status in the Japanese political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