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한비자(韓非子)는 중국철학사에 있어서 법가(法家)의 집대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을 인식함에 있어서 인간 내면의 도(道)를 의식하였다. 그의 ‘도’에 대한 인식은 노자(老子) 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황로학(黃老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는 외면적 자연의 질서를 위하여 ‘법’(法)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한비자는 인간이란 본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였다. 이익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상호 협의와 조절에 의한 도덕보다는 상(賞)과 벌(罰)의 강압적 수단을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효과적 통치를 위하여 인민에게 공포되어야 하는 ‘법’, ‘세력’[勢] 그리고 ‘술책’[術]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한비자에 의해서 체계화 된 법가철학은 ‘춘추전국’이라는 제한된 시기에는 통용되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 사상이 보편성을 지니고 통시대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무리라는 점은 통일을 성취한 진(秦) 제국이 단숨에 무너진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여기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 차이에 상당한 간격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유가철학은 ‘법’에 의한 통치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의한 합의 내지 설득을 기반으로 한다. 그 효과가 단기간에 적용되지는 못하는 점이 있으나, 장구한 시간과 넓은 공간에 적용될 수 있는 사상임을 확인한다. 사상사의 측면에서는 유가와 법가는 상호보완하여 인간의 문제에 대응하는 관계로 인식해야 하겠다.


Han Fei-tze(韓非子) was a thinker in old China. He was regarded a synthesizer of Legalism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He understood the ‘Dao’(道) as a basic being of the world. The ‘Dao’ was the term which used by the Daoists(道家). Han Fei-tze recognized that the world must be unified under the ‘law’(法). He understood the human being as interest-seeker by nature. So he insisted that the Junzi (君子) should rule on the basis of law not of the moral value. For him what is most important was the rule by strict sense of law not by morality which was stressed by Confucian thinkers. What Han Fei-tze put stressed upon were the power or authority which was insisted by Shen-Dao(愼到) and the art of conducting affaires(i.e. statecraft) by Shen Pu-Hai(申不害) and law or regulation by Shang Yang(商鞅). He synthesized these three elements of Legal theory. Han Fei-tze’s philosophy was recognized as a failure case because of sudden collapse-down of Unified Chin(秦) dynasty. This proved the fact the Confucian theory which was based upon the thought of Confucius(孔子) was theoretically right through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