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는 시사만평이 대중 저널리즘에 유입된 과정을 식민지 시기 민간언론의 형성과 대중화 기획과 관련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에서 만화가 서서히 공적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1910년대 저널리즘의 만화게재는 여전히 열악했지만,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만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신보』에서 접한 만화에 대한 경험과 1919년 이후 일본의 통치정책의 전환이 맞물려 1920년대는 드디어 식민지 조선에서 만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동성을 기자로 임명하고 최초로 만평란을 저널리즘에 고정시킨 『동아일보』와, 사회 문제를 만화로 재현한 『동명』이 그것을 주도해 나갔다. 1909년 『대한민보』의 ‘삽화’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시사만평이 『동아일보』와 『동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당대 저널리즘을 이끈 지식인들의 식민지 정치에 대한 인식을 만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며, 동시에 신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만화가 어떻게 정견을 형성해 나갔는지 고찰하고 있다.


This article focuses on Cartoon that have flowed into the public Journalism, which the process is related to the analysis of the formation and popularization of planning. Cartoon become gradually through a Colonial-Chosun is to draw attention to the process. Cartoon was still poor in 1910's journalism. But widely on a variety of topics addressed, Colonial Chosun were an opportunity to expand the spectrum of Cartoon(Comics). Cartoon finally began to form in 1920's Colonial Chosun, because of it was expericece facing the Cartoon from 『Mailshinbo』 and ruled Japan's policy shift since 1919. Appointed as a journalist and journalism in the first "Caroon page" trackon in fixed in 1920 years, 『Dong-A Ilbo』. And it was that the 『DongMyoung』 reproduce and led to social problems with Cartoon. In this process, awareness of the colonial politics of intellectuals, led at the tind of Journalism, and how the regime formed in the process of forming public opinion through a newspaper and went to sh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