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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구스쿠는 일본 본토나 중국의 성곽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진 성곽이지만 아직까지 출현 시기나 출현 배경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오키나와 浦添城 등지에서는 ‘癸酉年高麗瓦匠造’ 명문을 가진 기와들이 출토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1273년에 고려 공인에 의해 현지에서 제작되었고 이들은 1273년 제주도 항전에서 패하였던 고려 삼별초 세력일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오키나와 구스쿠의 가장 큰 특징은 구릉 경사면을 따라 비대칭적으로 축조하되 성 내부 공간이 분할되어 계단상의 평탄면을 형성하고 있는 ‘중축선 굴절 계단형’이라는 점이다. 이와같은 특징은 고려 성곽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서 개경성, 강화성, 용장산성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오키나와 구스크는 그 구조에 있어서나 출토유물 등에 있어 고려에서 망명한 삼별초 세력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오키나와에서 고려 기와를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몽연합군의 원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려의 석축 성곽을 모델로 삼아 오키나와 주요 지역에 본격적인 석축 구스쿠를 축조하여 대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별초 세력은 점차 현지 토착세력과 연대하여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한편 앞선 정치적, 문화적 경험과 다양한 철기, 원해용 선박 등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키나와가 유구왕국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과정에서 삼별초의 후예들은 점차 현지에 동화되어 나가면서 공식적인 기록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4세기의 기록에 나타난 명나라와 오키나와 사이의 교역에 있어 말이 대단히 중요한 품목에 해당한다는 점과 오키나와의 여러 민속 가운데에는 세골장과 같이 호남지역과 관련된 민속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진도와 제주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삼별초 세력의 오키나와 이주 가능성을 뒷받침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The ‘Gusku’ at the Okinawa islands is a fortress that has a typical structure. However, the origin of the Gusku is not well understood until now. This paper argues that the roof-tiles discovered at Urasoe-gusku were made by the people who migrated from Korea to Okinawa. The paper further argues that these roof-tiles were produced in 1273, the same year when the Sambyeolcho army was defeated by the allied force of Korea and Mongol. The Sambyeolcho army, which was defeated at the Jeju island, migrated to Okinawa and constructed the fortresses. The army reproduced the Korean-type fortresses at Okinawa, structurally similar to Gaegyeong-seong, as a mean to guard against the allied force of Korea and Mongol. The structures of the Gusku at Okinawa and Gaegyeong-seong at Korea are very similar in that they have several terraced spaces and bended ax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