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동아시아와 한민족의 역사활동 무대는 육지질서와 해양질서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都市의 선택과 항로의 개발은 국가발전정책과 관계가 깊다. 한반도 서해안지역에서 瑞山 泰安 唐津 牙山 등을 포함한 공간을 ‘內浦문화권’이라고 부른다. 당진은 몇 개의 복잡한 만과 내륙 깊숙한 곳에서 만으로 흘러드는 강들, 주변의 충적평야 등이 발달하였다. 또한 외해로 나가 몇 종류의 국제항로를 이용하여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당진은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선사시대부터 해양활동이 활발했으며, 삼한시대에는 소국들이 있었다. 그 후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 당진은 백제의 영토 내에서 해항도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백제시대의 전기에는 특별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 국가항구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웅진 백제시대의 전기에도 국제항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웅진백제의 후기와 사비시대에는 금강하구가 국가항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신라가 경기만을 장악하고 통일신시대에는 당진이 국제항구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였을 것이다. 당진은 자연위치와 해양환경, 체계를 고려할 때 해항도시의 조건을 갖추었고, 특히 역사상을 통하여 그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