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 논문은 일진회 문명화론과 합방론에서 국권, 민권 인식을 살펴 합방론이 문명화론의 귀결인지, 변질인지의 문제를 밝혔다. 일진회의 문명화론은 기본적으로 독립협회의 그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일진회는 독립협회 이래 문명개화론자들이 공유하던 문명화론 항목 중 민권과 인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가장 중시했으며, 상대적으로 대외적인 국권과 자주독립 문제는 경시했다. 민권이 보장되는 문명화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친일과 애국은 같이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일진회의 인민주의적 특성으로도 설명되나, 일진회가 점차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충실해지면서민권론은 공허한 것이 되어 갔다. 일진회가 합방론을 주창하자 국권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일진회 문명화론의 특성은 더욱더 사라지게 되었다. 오히려 일진회는 합방성명서에서 국수론적 어휘들을 내보이고 있고, 유생들이 이를 지지하는 현상까지 발견된다. 이를 일진회 문명화론의 귀결로 보기는 어렵고, 두가지 점에서 변질로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일진회 문명화론은 본래 독립협회계에 의해서 제창된 것이기 때문에 동학계가 주도하는 후기로 갈수록 논리가 실천에 종속되어 갔다는 점이다. 둘째, 일진회가 합방 주창으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대륙낭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이다. 민권론에서 국권론으로의 변화 자체가 바로 대륙낭인들이 겪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Ilchinhoe, the largest-scaled political·social group in the number of members in the period of 1904~1910, has carried out reform activities from the early stage of its foundation maintaining succession to ‘Civilization Theory(文明化論)’ of Dokripheuphoe[獨立協會, Independence Club]. The one of main contents of Ilchinhoe Civilization Theory was a national state theory giving priority to ‘civil rights(民權)’, which, as its means, advocated Orientalism and adopted the society representative of the national people. Ilchinhoe regarded it as recovery of civil rights to protect the life and wealth of the people from being exploited by officials, and asserted that it is civilization to raise sovereignty through such recovery of civil rights. However, as Ilchinhoe gradually becomes forces having vested rights,engages in pursuing political and economical interests and shows an attitude of accepting the policy of Tonggambu[統監府, the Residency-General], the meaning of the civil rights theory got to be gradually weakened. The political situation surrounding Korea-Japan Annexation concentrated all the disputes on a problem of sovereignty and Ilchinhoe was not an exception. Rather, the writings in favor of the annexation include traditional nationalistic speeches, which is influenced by Daeryknangin(大陸浪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