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강원 영동지역(江原 嶺東地域)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벼농사의 흔적을 검토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였다. 벼농사의 증거는 탄화미(炭化米) 같은 대형식물유체와 화분(花粉) 같은 미세식물유체의 형태로 유적에 잔존한다. 각 식물자료가제공하는 정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자료에 대한 동시적 검토는 선사시대 농경 전개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강릉 교동이나 고성 사천리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로 보아 강원 영동지역에서 벼농사는 늦어도청동기시대 전기에는 개시된 것이 확실하다. 방사성탄소연대 중 상대적으로 늦은 것을 취하더라도 벼농사의 개시는 기원전 1,000년 정도로 비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축적된 화분자료에 의하면 농경활동에서 비롯된 식생변화는시간적으로 이보다 훨씬 늦은 기원 전후에나 가시화된다. 탄화미는 벼농사의 존재를 말해주는 직접적인 증거인 반면화분자료는 농경집약화 및 이에 수반한 식생변화에 관한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두 자료 사이에서 연대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강원 영동지역의 벼농사가 청동기시대 전기에 시작된 후 소규모로 지속되다가 역사시대에 들어서면서 보다집약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양상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식단 구성상 쌀에 대한 의존도가 그리높지 않았거나, 농경 집단의 인구가 많지 않고 산발적으로 분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Archaeological evidence of carbonized cereals and results of pollen analyses were examined in order to elucidate prehistoric agricultural activities in the Yeongdong region, Gwangwon,South Korea. The examination reveals that the cultivation of rice (Oryza sativa) started in the region as early as ca. 1,000 B.C., which corresponds to the early phase of the Bronze Age. The palynological data sets, however, do not necessarily produce evidence of rice cultivation that predates the end of the Bronze Age. The seemingly contradictory findings in the two different types of botanical remains (i. e., carbonized cereal grains and pollen) may reveal two different processes in rice cultivation. It is argued that the former directly indicates the earliest date of rice cultivation in the region, while the latter better represents the beginning of agricultural intensification. During the Bronze Age, human impact on vegetation was largely negligible in the Yeongdong region, which in turn suggests that the amount of rice produced was presumably small. It is hypothesized that rice was a luxury food that was available in small amount but desired by many, and/or sparsely-distributed agricultural villages with a low population density exerted little visible impact on the natural vege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