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글 속에는 비록 소박한 형태로 개진되었지만 20세기 들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고조선의 중심지 위치에 대한 세 가지 설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만약 실학자들의 실증적인 학풍이 계승․발전되어 나갔다면 고조선사를 포함한 한국고대사에 대한 논의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역사는 일제 식민지로 귀결되었고 실학자들의 문헌고증에 바탕한 역사 지리 연구 흐름 또한 단절되고 말았다. 다만 실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일제시기와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실학자들 가운데 가장 치밀한 논지를 전개한 정약용은 漢四郡의 위치 비정을 통해 대체로 압록강 이남을 우리의 영역으로 보면서 압록강 중류의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우리 영역과 관련이 있는 지역으로 보았다. 그러나 압록강 이북 지역을 우리 강토로 생각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는 일제 시기와 해방 후 한국고대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이병도의 입론의 근거가 되었다. 무엇보다 정약용 등 실학자들의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실증에 입각한 문헌고증과 비판정신이다. 오늘날 고조선사를 연구하려는 학자들은 실학자들이 실증한 문헌자료 외의 것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문헌 고증은 고조선사를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오늘날 고조선사에 관한 위치나 강역의 문제가 애국심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엄밀한 사료비판을 통해 객관적인 고조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때 정약용 등 실학자들의 연구방법과 비판정신은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Though it was stated in simple form in the articles of Sirhak(Practical Learning) scholar of the latter period of Old Chosŏn, the three views of the center location of Old Chosŏn which became the object of much controversy in the 20th century all appear. If the empirical academic traditions of Sirhak scholar was succeeded to and developed, discussion on Korean ancient history including Old Chosŏn history might have been advanced to more desirable directions. However, the history of Old Chosŏn was concluded to Japanese colony and the flow of research on historical geography based on historical research on literature by Sirhak scholars was also cut off. Only, the research result of Sirhak scholars has certain influences in Japanese empire period and until today since the Liberation. Especially, Jeong Yak-Yong who unfolded the most elaborate point of the argument among Sirhak scholars by and large regarded the south of Aplok River as our region through assumption of the location of Hansagun(Han Chinese Commanderies) and regarded the north of the midstream of Aplok River as the region related to our territory. However, it was certainly not that he thought the region of the north of Aplok River to be our territory. It became the foundation of the argument of Lee Byeong-Do who suggested the direction of studies on Korean ancient history in Japanese empire era and after the Liberation. Above all, what is regarded as being important in Sirhak scholars' recognition of Old Chosŏn history is historical literature research and spirit of criticism based on proven facts. The enormous historical literature research as much as it is impossible for scholars today who are to study Old Chosŏn history to find something additional to the literature materials he proved is providing precious materials to the researcher who are to study the history of Old Chosŏ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