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연구는 1931년 중국 만보산 지역에서 수로 개간을 둘러싸고 중국인과조선 농민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이 빌미가 되어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한 중국인 배척 폭동인 ‘배화 사건’의 의미를 당시의 민족주의 담론의 전개 과정과 관련지어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이를 위해 동아일보 와 조선일보가 벌인 민족주의 담론 경쟁이 만보산 지역 사건 보도에 미친 영향과 당시 평양에서 ‘배화 사건’을 경험한 오기영과 김동인의 수기에서 민족의식을드러내는 방식을 분석하였다. 먼저 만보산 지역에서의 수전 개간을 둘러싸고 중국인 농민과 조선인 농민이 갈등한 ‘만보산 지역 사건’과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중국인 배척 폭동인 ‘배화 사건’은 따로 떼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둘째 ‘배화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조선일보 의 오보는 그전부터 동아일보 와 조선일보 가 벌여온 민족주의 담론 경쟁에서 야기된 것이다.셋째 사회주의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더 강화된 담론 경쟁에서 가지게 된 조선일보 의 조급성이 오보를낳은 결정적인 원인이다.넷째 ‘배화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그 교훈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사건 직후 씌어진 오기영의 수기는 반성적인 민족주의자의 입장을 보여주지만 그보다 늦게 나온 김동인의 수기는 오히려 사건 당시의 민족의식의 ‘오용’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그 결과 ‘배화 사건’은 민족의식의 오용에 대해 반성할 기회가되었지만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식민주의자 일본으로서는 중국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기에보도 통제와 의식적 외면 속에서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