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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言’이란 말이 ‘지방어’로서의 의미를 확보하게 된 것은 개화기에 들어서서의 일이다. 그 이전, 즉 근대 이전 시기에 ‘방언’은 주로 ‘중국의 변방어’를 뜻하였다. 개화기 초기에는 그 의미가 약간 평준화하여 ‘어느 한 나라의 언어’를 가리켰으나 근대적 외래 요소의 영향(구체적으로는 ≪한불뎐≫ 등 당시 천주교 신부들의 공유 자료 및 일본어의 영향)으로 ‘방언’은 ‘지방어’를 나타내는 말로 뜻이 바뀌어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는 일제강점기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강력히 대두한 ‘표준어’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방언’은 ‘표준어가 아닌 말’ 또는 ‘그 지방에서만 쓰는 말’의 의미로 한정, 정착되었다. 그 결과 ‘방언’이 그 이전 시기부터 쓰여 온 ‘사투리’와 동의어가 되었으나 이론적으로는, ‘방언’이 ‘한 언어 분화체의 전체 체계’를 나타내는 단어 그리고 ‘사투리’가 ‘일정 지역에서만 쓰이는 비표준적인 말’을 나타내는 단어로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How has the word ‘Bangeon[方言]’ undergone conceptual transitions in Korean history? To answer the question is the goal of this study. Before the time of enlightenment[開化期], the word ‘Bangeon’ denoted the language of the satellite countries of China. As time passed, the ‘Bangeon’ stood for a language of the countries in the early time of enlightenment but the particular language of a region in the late time of enlightenment. The latter concept was formed under the influences of Roman Catholic fathers' language materials and a loanword from Japanese at that time. In Japanese Ruling Era[日帝强占期], with the appearance of standard language the concept of the ‘Bangeon’ was changed to 'the nonstandard language' or 'the words of a district alone'. To this day, such meaning of the ‘Bangeon’ has maintained but theoretically the ‘Bangeon’ was the word denoting the whole system of 'the dialect', namely the variety of a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