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연구는 「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찍었던 고려활자와 관련된 계속 연구로 이미 알려져 있는 分司大藏都監에서 간행된 「東國李相國集」 全集의 版本도 그 底本은 證道歌字로 찍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東國李相國集」 全集을 찍는데 사용된 활자의 글씨와 證道歌字가 같다면 기존에 추정되었던 여러 가지 사실중 「古今詳定禮文」은 새로운 활자를 주조하여 찍은 것이 아니며 소위 「證道歌」, 「詳定禮文」, 「李相國集」이 10여년 이내에 같은 활자로 찍었고 활자 역시 開城에서 주조되어 江華島 遷都 때 함께 가지고 가서 책의 출판에 사용하다가 1270년경 다시 還都할 때 돌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배경과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편 많은 양의 실물활자들이 나타남에 따라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복’자나 북한의 ‘전’자 등 고려활자에 대하여 중국학자들이 주장한 몇 가지 측면의 부정적 주장을 불식시키는 자료로 이 활자들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s one of the series of researches about Zengdoga type(證道歌字) used for printing Nammyungcheonhwasangsongzengdoga(南明泉和尙頌證道歌) in the Goryeo dynasty. In this study, we tried to reveal that Zengdoga type(證道歌字) were also used for printing the original base copy of Donggukyisanggukjip(東國李相國集) published in Bunsadaejangdogam(分司大藏都監). In this study, some evidences and background information are presented as follows: If the types used for printing Donggukyisanggukjip(東國李相國集) and Zengdoga(證道歌) are the same one, it is not true that Gogumsangjungyemoon(古今詳定禮文) was published by another new metal types. Consequently Zengdoga(證道歌), Sangjungyemoon(詳定禮文) and Yisanggukjip(李相國集) were published by the same metal type, that is, Zengdoga type(證道歌字) in 10 years. At that times, Zengdoga types(證道歌字) were made in Gaeseong(開城), later moved to Ganghwa island(江華島), and returned to Gaeseong(開城) in 1270. Since a lot of actual Zengdoga types(證道歌字) were recently open to the public, they could be used to refute the negative argument of Chinese scholars against ‘Bok(山/復)’ type held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Jeon(方顚)’ type held in Nor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