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三淵 金昌翕(1653∼1722)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조선의 문화적 변혁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특히 그는 18세기 화려한 시단의 개창자로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그 중요한 연구 중 하나는 그의 시문학의 배경에 관한 것이었으며, 특히 명대 前後七子와 公案派의 영향력 여부를 논증하는데 촛점이 두어졌다. 이에 양 문예사조에 대한 김창흡의 진술은 매우 미미하지만,그의 작품 경향과 주변의 문헌들을 통해 볼 때 그가 두 문예사조의 영향을받았을 것이라고 논의되었다. 본 논문은 그러한 수용 가능성을 긍정하되양 문예사조에 대한 그의 언급이 왜 미미한데 그쳤는가 하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는데 주목하여, 김창흡이 두 문예사조를 어떻게 변형하여 자신을이들로부터 차별화시켰는지를 고찰하였다. 김창흡과 명대 문학사조를 비교하자면, 먼저 그가 조선시대 보기 드믄성리학자이자 시인이었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안파의 영향력 문제에서, 그는 公案派와 ‘性靈’이라는 어휘를 공유하지만, 공안파의 그것과 달리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수양되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성령의 의미를 계승했고 아울러 성리학적 윤리에 저촉되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성리학적 심성론을 토대로 전통적인 성령 개념을 성리학화한 것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본체인 태극을 체인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체인을 담당하는 마음의 知覺 활동을 확신했다. 이는 당시 모든 조선 성리학자들이 공유하는 바가 아니다. 호론에서는 미발과 이발에서 태극을 체인하는 길을 축소했고, 낙학의 수장격이었던 그의 형 김창협은 끝내 자신의 지각론을 확신하지 못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김창흡은 미발과 이발에서 태극을 체인하는지각의 기능을 확신했다. 아울러 그는 성리학적 논증보다는 그 실천에 주력했다. 이는 그가 주자학 외에 조성기를 통해 태극을 체인하는 관물설에 큰관심을 두고 박학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그는 주자의 道文本末論적 문예론과 박학 정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성령으로 하여금 여러 시 체제들로부터 두루 진실을 섭렵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다. 그는 『시경』으로부터 명대 소품까지 섭렵한 후 시의 길이, 운율 등 여러 측면에서 절충과 파격을 통한 실험을 행했고, 시의 내용에서도 이전의 관습을넘어 사상, 경제, 군사, 토지, 사소한 주변사물까지로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그의 모든 시적 실험은 18세기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시단 전개 양상의 시발점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정서를 배제한 산수시, 철리시, 운율의 파괴와 혼융, 산문적인 어구의 사용 등은, 성령으로 하여금 시의 체제라는 구속을 넘는 자유를 얻게하는데서 나아가 시와 산문의 경계에 다가가게 했다. 성리학을 통해 김창흡의 시에는 시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다. 김창흡에게서 성리학적 지각의 세례를 받은 성령은, 시와 사상이 긴밀한 관계를 지님으로써 수반되는 명・암을 뚜렷이 보여준다.


Kim, Changheup(金昌翕,1653-1722) has been watched as the pioneer of diverse tendencies of literary world in 18th Joseon(朝鮮) Dynasty. One of the issues of the investigation on his literature is whether he was influenced by two literary school of Ming Dynasty, qianhouqizi(前後七子) and gonganpai(公案派). A few investigators said he must be influenced by them as some evidence of the texts telling him, though he never said about the schools. This dissertation presents that he made his works differentiated from their works. Kim noted the characteristic word, xingling(性靈) of gonganpai as the human ability creating poems. However the relation between xingling and moral is different from that of gonganpai. He never bestowed the vocabulary the meaning trespassing morals he was confident as inviolable. He reinterpreted traditional meaning from Han Dynasty, numinous human ability creating poems which had ever been hostile to morals to one as one in Neo-Confucianism in Song Dynasty. He said xingling as acquired though cultivation as well as inherent contrary to xingling of gonganpai, which is valuable for its uncultivated honesty. The moral characteristic of xingling seems resulted from his Neo-Confucianism and the cognitive ability of Xin, mind which is called zhijue(知覺). Poeple can recognize the ultimate oneness of the universe, taiji(太極) with the help of zhijue. He tries new rhyme mixing or destructing rhymes from past, very long series of over 100pieces of poems, and new subject matters like economic issues, the land management, the military and other trifling stuffs. He never set the ideal rules of poem from past, which was done by qianhouqizi. His various experiments on poem inspired poets of 18th of Joseon Dynasty. However the new characteristics means his works out of boundary not allowed to all the poems. His thoughts made his works free from traditional rules as well as destructing identities of poem it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