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 고는 미발표 문서자료와 증언을 통해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에서 핵심적 행정기관이면서도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와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기획단의 성립과정, 성격, 구성, 활동을 발굴하였다. 나아가 추가적으로 이를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하였다. 첫째, 중화학공업지원정책을 총괄하고 주요 중화학공업의 1차 사업을 추진한 곳은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기획단이었고 경제기획원은 중심에서 배제되어 보조역할에 그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중화학공업화에서 공식적인 정부조직의 보고, 결재체계가 배제되고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기획단은 산업계의 정보와 요구가 청와대로 바로 연결되는 경로가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청와대와 산업계의 직접적 연결은 1970년대 공업화, 수출의 목표시기를 단축시키는 긍정적인 면과 경제력집중이라는 부작용을 동시에 불러왔다. 박대통령 사후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제기획원의 역할이 복원되고 이전의 정식 보고, 결재체계가 복원되었다. 중화학공업화추진 행정기관이었던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와 기획단에 대한 검토와 검토 결과는 1970년대 한국 행정기관과 역할에 대한 심화된 연구가 필요하며 나아가 1970년대 한국 공업화과정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 해석에 보완이 필요함을 시사해 준다.


This paper examines the formation process, the nature, the composition and operation of Heavy and Chemical Industry Promotion Council and its Planning Office through new materials and testimonies. As a result, it is revealed contrary to the existing understanding that Planning Office generalized and carried forward the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zation Plan in the 1970s, and Economic Planning Board played a subsidiary role excluded from an industrial policy center. In process of the 1970s'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zation, Heavy and Chemical Industry Promotion Council Planning Office became a path connecting president and industrial circles. This direct connection between the two brought forth both a positive side of shortening the goal period of industrialization and export, and a negative side of economic power concentration. With a critical attitude toward the 1970s'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zation Plan after president Park's death, the role of Economic Planning Board was restored. This study implies that it is necessary to research more closely into an intra-government organization and its role in the 1970s, and to make a supplementary examination of the existing views and interpretations about the industrialization process in the 197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