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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전후 일본의 식민지 기억을 한일회담 전후에 결성된 후지카이 관련자들이 남긴 식민지 체험 기억을 담은 회고록과 수기를 바탕으로 귀환자의 식민지 체험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전이되고 왜곡되었는지를 검토했다. 제국의 일반 서민이 식민지를 기억하는 회로는 다양하다. 식민지 기억은 ‘식민지 권역’과 ‘비식민지 권역’이라는 기억 대상에 따라, 또 본국으로의 귀환과 현지 억류 등 원체험의 차이에 따라 재편되었다. 제국 서민의 조선에 대한 기억은 식민자로 살아온 역사를 봉인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여타 식민지 권역과는 다른 양상으로 기억되었다. 후지카이를 비롯한 많은 식민지 귀환자들은 패전 이후 억눌려 왔던 기억을 한일회담을 계기로 ‘재생’시켰다. 전후 일본사회가 귀환자에게 던졌던 ‘싸늘한 시선’에 억눌려 살아온 자신들의 모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였다. 한일회담을 통한 조약 체결은 식민지로부터의 귀환자들을 ‘식민지 개발 공로자’가 아니라 ‘침략자의 첨병’으로 인식하게 했지만, 후지카이를 비롯한 많은 귀환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식민지에서의 자신들의 족적을 합리화하는 ‘언설의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전후 일본사회의 귀환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식민지에 대한 향수, 자기합리화의 감정은 새로운 제국의식으로 형태를 바꾸어 표출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합리화의 감정을 넘어 신생 한국에 대한 차별적인 고정관념의 고착화라는 ‘기억’의 역전으로 나타난다. 귀환자들은 식민지 체험에 대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상징되는 ‘사악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외지로 밀려난 ‘선량한 서민’이라는 허울 좋은 도식으로 굴절시킨 심층의식을 형성했다. 식민지 시대를 언급한 수기의 공통성은 수기의 주인공인 자신이나 자기 육친은 하나같이 조선인에게 차별의식을 품지 않은 ‘착한 일본인’으로 형상화되었다. 한일 간의 ‘기억을 둘러싼 역사전쟁’은 아직 ‘휴전’ 상태이다. 완전한 ‘정전’ 상태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공동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후지카이의 식민지 기억에 관한 검토는 해방 전후 연속과 단절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인의 식민지 기억과 비교 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In this thesis, I examined how the colony recognition of the japanese returned was transferred and distorted after the 2nd World War, on the center of the memoirs and manuscripts of the Fujikai related persons. The circuits in which the general japanese citizens remembered were various. The colony memories were reorganized according to the memory subject such as the colony district or the non-colony district, and the difference of original experiences like the return to the country or local detention. Though the empire citizens as the colonizers must have lived as 'the bordered people', their memory on the relation of the empire and the colony, Chosun was very different with on that of other colony districts. Many colony returned japanese have revived the suppressed memories after the war, with the talks of Korea and Japan as a momentum. It was the trial that the returned, who have been repressed in the cold gaze of the japan society, would have to justify their own attitudes. Though the agreement concluded through the talks of Korea and Japan recognized the returned as not 'colony developers', but 'advance guard of the invasion', they, resisting to this, have built 'the justifying space of their traces' in the colony of Chosun. In the Japan society after the war, the colony returned people's homesick on the colony and the self-justifying feeing were changed as a new empire consciousness. In the manuscripts on the colony, the returned people and their family have been depicted as 'a good people' who have never had discriminatory consciousness to the korean. It was not simply the feeling of justification, but was 'the reversal of the memories', the adherence of the discriminated and fixed idea to the newly-born Korea. The historical war on the memory between Korea and Japan has been 'a suspension state' so far. To face with the complete 'cease-fire', we have to take the procedure in order to revive our common memories between Korea and Japan. The examination of Fujikai's memories on the colony should be compared with that of the korean. And also I would go on inquiring into this prob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