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일제강점기 초기에 수원지역에 유입된 서양음악은 2010년 한 세기가 지났다. 그동안의 수원지역의 음악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된 자료는 한국 예총 경기도 연합회에서 발간한 『경기예총 40년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에 대중 속에 뿌리내렸던 판소리와 민요는 소위 ‘개화기’ 바람을 타고 창가로 발전을 하면서 국악과 양악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창가는 동요, 가곡, 대중가요로 나눌 수 있으며, 수원지역 작곡가인 홍난파는 대중가요를 제외한 동요와 가곡을 창작한다. 일제강점기때 작곡한 그의 ‘봉선화’는 당시 전 국민의 애창곡이었으나 한동안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수원지역의 음악회에 관한 자료에는 <봉선화>의 독창과 <무궁화 삼천리 내사랑>의 합창 외에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1980년 광주항쟁 이전까지의 시기를 현대의 한국음악 1기로 보고 있는데, 수원지역의 양악 또한 수원문화원의 개원과 경기음악협회 발족으로 음악가들의 활동 근거지를 토대로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 시기에 경기도청이 인천에서 수원으로 이전되면서 수원지역의 음악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많은 합창단이 창단되었다. 현대의 한국음악 2기라고 볼 수 있는 1980년부터 현재까지 수원지역의 서양음악은 다른 어는 지역보다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다.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개최를 통해 음악활동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연주단체와 문화재단의 창단, 공연장의 건립, 음악제 및 마을 음악회, 각종 경연대회, 전문음악단체와 아마추어 음악단체의 창단 그리고 음악교육기관 개교 등을 통해 서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악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본 조사연구에서는 거론되지 않았으나, 수원지역 출신 음악가 뿐 아니라 수원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지역음악 발전에 기여한 많은 음악가들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에서부터, 수원지역의 음악학원 원장 및 음악 강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들이 음으로 양으로 수원지역 음악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각 대학의 음악관련 교수 및 강사, 교향악단과 합창단 단원, 그리고 전문단체나 아마추어 단체의 모든 회원을 포함해서 수원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음악관련 종사자들은 수원음악계에 동참해서 수원지역의 음악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다. 본 조사연구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앞으로 새롭게 밝혀질 부분들은 보완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A century has passed since the Western music was introduced to Suwŏn at the beginning of the reign of Japan in 1910. There are few information regarding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in this area except for The 40 Years of the Arts in Kyŏnggi Province (Kyŏnggi yech'ong sasimnyŏnsa 『경기예총40년사』 that was published by the Society of Korean Arts in Kyŏnggido 京畿道. Therefore this research has been done by field trip and interviews in Suwŏn rather than by literature. Yangak 洋樂 (Western music in Korea) is a contrasting word to Kugak 國樂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e.g. p'ansori 판소리 (dramatic storytelling) and minyo 民謠 (folk song), that were rooted in Chosŏn dynasty were developed to ch'angga 唱歌 at the time of enlightment since 1876 and since this period the separation started between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Western music. Ch'angga consists of tongyo 童謠 (children's song), lied, and popular song, and Hong Nan-p'a 洪蘭坡 who is from Suwŏn composed children's songs and lied. One of his songs Pongsŏnhwa 鳳仙花 was very popular under the reign of Japan, but it was prohibited for a while. There is no concrete information left regarding the concerts of Suwŏn area except for the solo performance of the Pongsŏnhwa and choir performance of the Mugunghwa Samch'ŏlli Nae Sarang 무궁화 삼천리 내 사랑. Generally speaking it is called the First Period of Korean Music between 1953 (the end of Korean war) and 1980 (the resistence of Kwangju 光州). The Western music in Suwŏn 水原 was blossomed with the opening of the Suwŏn Cultural Center and the Kyŏnggi Music Society. At this time the provincial office of the Kyŏnggido was moved from Inch'ŏn 仁川 to Suwŏn and this has helped the active development of music and many choirs has founded. In the Second Period of Korean Music from 1980 to now the Western music in Suwŏn has grown faster than any other areas in Korea. Especially it has been accelerated after the Asian Game in 1986 and the Olympic Game in 1988 in Korea. Next to Seoul Suwŏn has shown the most active musical activities such as founding performing and cultural organizations, concert halls, music festivals, community concerts, numerous competitions, professional/ amateur music organizations, and institutions for music education. There are many musicians who are from Suwŏn and who aren't but contributed greatly behind the scene to the development of music in the Suwŏn area. They are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teachers, the chairs of the music institutions and music instructors. And the professors, instructors, orchestral performers, choir members, members of professional or amateur organizations are the leaders of the musical development of the Suwŏn area. It will be future project to complement things that are left out from this research and that are new find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