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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후기의 明州는 내부적으로는 중국 내륙 水運과 연결되고 외부적으로는 동아시아의 해상으로 진출할 수 있는 結節点이라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고, 경제적으로는 농업 및 각종 수공업의 발전과 이에 수반하는 상업, 교역발전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국제교역의 중심항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9세기 전반의 동아시아 해상교역을 주도하고 있던 張保皐의 죽음(841)이후 長江 이북의 登州, 楚州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재당신라인 네트워크가 와해되기 시작하여 명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로 재편되었다. 張友信, 李隣德, 徐公直․徐公祐 형제 등으로 대표되는 당 후기 명주의 국제교역상들은 여전히 楚州 등 기존의 재당신라인사회와의 연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며 동아시아의 해상교역을 주도하였다. 교역을 통한 상품의 전달, 商人․官僚․求法僧 등의 海上往來 및 현지 체류와 求法巡禮時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각지에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동아시아의 해상교류를 주도하였다.


唐後期の明州は內部としては中国の內陸水運と連結されて、外部としては東アジアの海上へ進出できる結節点である海上交通の要衝地であった。經濟的には農業および各種手工業の發展と、これに隨伴する商業や交易發展を基盤として、東アジアの国際交易の中心港として成長した。また、9世紀前半まで、東アジアの海上交易を主導하していた張保皐の死(841)以後、長江 以北の登州、楚州を中心として形成された在唐新羅人のネットワークが瓦解されるはじめ、明州を中心とする新たなネットワークが再編された。張友信,、李隣德,、徐公直․徐公祐 兄弟などとして代表される唐後期の明州の国際交易商たちは、同然、楚州など旣存の在唐新羅人社會との連繫をどのぐらいは維持しながら、東アジアの海上交易を主導した。交易を通じる商品の傳達,、商人․官僚․求法僧などの海上往來および現地滯留と求法巡禮時の協力者としての役割を擔當しながら、各地に廣範圍な人的ネットワークを形成し、東アジアの海上交流を主導したと思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