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점은 고구려와 모용씨가 요동지역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3세기 말부터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완점하기 전 시기인 4세기까지의 기간에 해당한다. 특히 342년 전연과의 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고구려 남도와 북도에 관한 지금까지의 여러 견해들을 살펴보고, 당시의 문헌 기록을 재검토하면서 고구려 남도와 북도의 경로를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그동안 고구려 남도와 북도의 경로에 대해서는 각각 4가지 설이 제시되어왔다. 그 가운데 南道는 渾河→蘇子河→富爾江→新開河→集安으로 이어지는 노선, 北道는 撫順(渾河)→淸原→揮發河(柳河)→通化→ 葦沙河→集安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당시 新城의 소재와 요동지역의 상황, 그리고 고구려 산성의 분포 상황을 통해 볼 때 기존까지 남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渾河→蘇子河→富爾江→新開河→集安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북도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전연은 당시 요동지역 상당 부분의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혼하 이남의 특정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병사를 집결할 수 있는 역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전연이 고구려의 허를 찌르면서 공격한 남도는 혼하 이남에 위치하는 태자하 유역을 따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구려 산성은 이러한 역사 과정 중에 파생된 물질적 자료로서, 본고에서는 3세기 말∼4세기까지 고구려 남도․북도상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구려 산성의 실제적인 모습을 좀 더 구체화해 보고자 하였다. 이 시기 고구려 산성은 기본적으로 石築 산성이 축조되었다. 특히 쐐기꼴(楔形) 성돌의 사용은 고구려 산성의 축성 가운데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구려 산성의 유형으로는 包谷式, 山頂式, 기타 유형인 馬鞍式, 山腹式의 유형도 확인된다. 이 가운데 산정식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유형은 군사적인 성격의 측면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러나 太子城, 五龍山城 등의 포곡식 산성, 또는 마안식 산성은 단순한 군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지방통치를 위한 거점성으로서의 역할도 겸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산성의 규모는 도성을 비롯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중소형급인 1000∼1500m 규모이다. 성벽을 제외한 고구려 산성의 시설로는 성문과 치, 성가퀴, 돌구덩이(石洞) 등이 있는데 이들 시설 모두 이 시기 고구려 산성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문 가운데 이 시기에 이미 옹성이 축조되었음이 확인되는데, 그 형태로는 ‘凹형’, ‘ㄱ형’, ‘二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가퀴과 돌구덩이(石洞)는 구조적으로 봤을 때 두 시설이 동시에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丸都山城, 五女山城, 覇王朝山城, 高儉地山城, 黑溝山城에서 두 시설이 동시에 확인되고 있다. 특히 돌구덩이는 동일시기 다른 지역, 또는 고구려 이후 다른 시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고구려 산성만의 특징이다. 또한 覇王朝山城, 黑溝山城, 太子城, 五龍山城 등에서는 성벽의 보조시설로 인공의 치가 축조되었다. 그밖에도 우물, 저수지와 같은 水源, 산성 내외를 관측하기 위한 望臺 등도 이 시기 산성의 기본시설로써 공통적으로 축조되었다.


This study covers the period from the late 3rd century, when Koguryo was faced against Murong clan over the Liaodong region, to the 4th century before the former gained complete control over the region. With a particular focus on its war against the former Yan in 342, the study examined various theories regarding its north- and southbound expansion discussed so far and traced its north and south routes for expansion by re-reviewing the documents from the period. There are four major theories about Koguryo’s north and south routes. The dominant south route covers Hun He→Suzi He→Fuer Jiang→Xinkai He→ Jian, while the dominant north route covers Fushun(Hun He)→Qing Yuan→ Huifa He(Liu He)→Tonghua→Weisha He→Jian. Considering the location of the nova, the situations surrounding Liaodong, and the distribution of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those days, however, it is very likely that the route of Hun He→Suzi He→Fuer Jiang→Xinkai He→Jian, which has been regarded as the dominant south route, was actually the north route. In those days, the former Yan had the full control over the traffic routes across the Liaodong region. Given that it was in a historical context where it could always mobilize troops in certain areas south of Hun He, there is a big possibility that the south route the former Yan took to ambush Koguryo must have lied along the Taizi He area south of Hun He.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were the material products of the historical process, and the study tried to draw a more concrete picture of those mountain fortresses estimated to have been built along its north and south route between the late 3rd century and the 4th century. Most of the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from that period were basically made of stone bricks. In particular, the use of wedge-shaped castle stones holds such great significance that they are the biggest characteristic of those mountain fortresses. The major categories of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include the valley encircling and peak encircling style with a few examples of the saddle and mountainside style. The peak encircling style records the highest percentage of them all because of its strong military features. The fortresses built in the valley encircling style such as the Taeja and Oryong Mountain Fortress and those built in the saddle style served as the base fortresses for local governance as well as military bases. Those mountain fortresses were mostly medium- or small-sized in the range of 1000∼1500m except for special cases like those in the capital city. The facilities of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include the gate, turret, battlement, and stone pits in addition to the walls. They were all found in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from the period. The gates of the mountain fortresses already had the barbican, whose shapes were ‘凹’, ‘ㄱ’, and ‘二.’ Structurally speaking, the battlements and stone pits must have been built at the same time and are found in the Hwando, Onyeo, Paewangjo, Gogeomji, and Heukgu Mountain Fortress. Especially the stone pits are a unique feature of Koguryo’s mountain fortresses as they were never confirmed in other areas or after Koguryo. Artificial turrets were built to supplement the fortress walls in the Paewangjo, Heukgu, Taeja, and Oryong Mountain Fortress. In addition, water resources such as wells and reservoirs were also built as part of the basic facilities of mountain fortresses those days along with watchtowers to survey in and outside the fortres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