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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의하면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은 자유 개념과 물자체 개념에 의거한다. 본 논문에서는 그 중 물자체 개념을 다루어 그 기본적 내용을 고찰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형이상학의 예비학이고, 선험적 관념론은 그 성과로서 평가된다. 선험적 관념론은 대상을 물자체와 현상으로 구별하는 학설이며, 비판기 칸트의 철학적 당위는 그 구별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이 때 물자체라는 개념의 일차적 의미로 보는 것이 우리들 외부에서 우리의 감관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자체 개념은 여러 실체의 통일적 연관이라는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며, 칸트의 전비판기와 비판기를 걸친 주요한 모티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물자체에 의한 촉발과 수용을 사실로 전제하지 않으면 선험적 관념론은 성립할 수 없다. 게다가 일단 도입된 물자체 개념은 주로 범주의 적용을 둘러싼 선험적 관념론의 인식론으로서의 정합성에 저촉된다. 즉 물자체 개념을 입론의 근거로 하는 한, 선험적 관념론은 성립함과 동시에 붕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해석자들이 물자체 개념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그러한 시도는 칸트의 근본적인 의도를 간과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형이상학을 새로운 학으로서 확립한다고 하는 칸트 문제의식의 일관성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 비로소 선험적 관념론은 이 새로운 형이상학을 위해‘인간의 입장’을 규정하려고 한 칸트의 고투의 궤적으로서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According to Kant, the possibility of Metaphysics as science is based on the concept of freedom and the "things in themselves". In this paper, I will take up the concept of the "things in themselves", and enter into the matter of this subject to explore the problems. Kant's critique is propaeduetic of Metaphysics, and transcendental idealism has been estimated as an accomplishment of the critique. Transcendental idealism says that we have cognition only of "appearances", not of "things in themselves". But it is far from clear what the doctrine means, and especially unclear what sort of restriction it is supposed to place on our knowledge. Some researchers of Kant have seen the restriction as trivial, so trivial as to be utterly meaningless, even bordering on incoherence. But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e concept of "things in themselves" is one of the important motif of Kant's critical philosophy. And without presupposing the affection by the concept, transcendental idealism could not be established. Therefore, we have to follow the Kant's consequent problem which he has tried to establish the Metaphysics as new science. Because only in this case, we can estimate his effort exactly that he try to regulate the human's situ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