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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penhauers ästhetische Theorie läßt Kunst vor allem als ästhetisch-mystisch Medium des Übergangs und der Vermittlung metaphysischer Erkenntnis- und Lebenshaltungen verstehen. Eckerts These betont mehrere Aspekte: zum einen soll die Erfahrung der Kunst ästhetischen Abstand gewinnen lassen, der die Vorstellungswelt der Immanenz transzendiert, d.h. sthetische Kontemplation soll im Kontext der Philosophie Schopenhauers die Befreiung des Intellekts von der Macht des ‘Willens’ ermöglichen. Zum andern trägt der ästhetische Abstand zur Welt Züge mystischer Kontemplation, Momente intensiver Augenblickserfahrungen, die aber immenr wieder zurückfallen in immanente Erfahrungsbezüge von Welt. Darin ist ästhetisch-mystische Kontemplation zurückvermittelt in die Suche nach der Bedeutung, die mystischer Unmittelbarkeit zuzukommen vermag. So läßt sich schließlich die Freiheit der ästhetisch-mystischen Kontemplation zugleich als Verttlungsmedium metaphysischer Erkenntnis wahren Lebens verstehen; und zwar im Sinne der Negation immanenter Selbsthaltungstendenz, um für die Erlösung des ‘Nirwana-Nichts’ frei werden zu können. Zugleich muß man erwähnen, daß Schopenhauers Position stärker am unmittelbaren Ausnahmezustand ästhetischer Kontemplation als an ihren Übergangscharakter interessiert ist, sucht er doch Kunst als Anschauung von ‘Ideen’ gegen das bloße Wissen der Philosophie zur Geltung zu bringen. Freilich gelingtihm dies nicht immer widerspruchsfrei. Es scheint daher legitim, daß Echerts Deutung die Momente des genannten Zusammenhanges anders gewichtet.


쇼펜하우어는 자기 자신의 사상이 한편으로는 플라톤과 칸트 다른 한편으로는 , 인도원시종교사상(특히 우파니샤드 통해)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등에서 얻은 지식을 많은 경우 불교사상과 혼동해서 알고 있다. 이는 그 당시, 유럽에서 불교사상에 대한 자료의 입수 내지 번역작업이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연유한다. 그는 이러한 애매한 지식으로써 서양사상과 동양사상 내지는 서양의 종교(기독교)와 불교브라만교를 비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이러한 양대 진영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이해비교를 통해 우리는 동서양사상 간에 서로 교차점을 찾아볼 수 있는 창조적인 계기를 구할 수 있다는 데서 논자는 쇼펜하우어의 시도에 의의를 두고 있다. 에케르트교수는 쇼펜하우어 사상에 있어 미학과 신비주의의 문제로써 동서양사상 간의 관계를 시사하고자 한다. 에케르트는 쇼펜하우어에 있어 미학을 인간의 형이상학적 물음(인간의 참다운 본질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을 해결하는 수단내지 과정으로서 보고 있으며, 인간의 이러한 형이상학적 물음을 쇼펜하우어는 서양적 사고의 합리론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대 인도사상(불교 포함)에 의해 풀어보려고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미학(감성론 내지는 예술이론)과 동양사상(신비주의 에 있어서의 인식론(『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바탕하고 있는)에 대한 개관적 논의를 보여준다. 1) 물자체로서의 의지는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로서 나타난다(현상한다). 2) 이와 같은,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로서 나타나는 현상의 세계는 분열되어 있으며(조화,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고통과 죽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인간의 이성은 인식하도록 해준다. 3) 이러한, 이성의 인식을 통해 우리 인간은 현세(고통, 죽음으로 끝나는)로부터 해방, 구제되어 물자체로서의 세계(현상 세계의 분열, 투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일치, 나와 세계의 일치통일조화가 성취되는)에 도달하게 된다. 위에 열거한 1), 2), 3)의 과정을 현세적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쇼펜하우어는 그의 미학이론(예술이론)을 통해서 보여주는 데, 쇼펜하우어는 특히 그의 비극이론을 통해 그것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비극에 있어 영웅들의 끊임없는 노력, 투쟁의 장과 이것을 관람하는 관객 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은 영웅들의 1) 종국적인 파멸, 죽음, 고통에 의해 우리의 삶 자체의 고통, 불행을 2) 인식하게 되며, 이러한 인식 통해 현존재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또한 인식하게 되며, 나아가서 3) 이 고통의 삶을 초월하고자 한다. 이 초월의 순간들은 비극에 의해 도달될 수 있다. ‘비극’의 관람에 의해 순간순간 가능한 초월의 체험은 선의 훈련에 있어서 체험되는 무아탈아의 경지와 비교될 수 있다. 이 경지에 있어서는 나와 객관적 세계 간의 분리가 사라지며, 나 또한 완전히 통일된 것으로서 체험된다. 쇼펜하우어 개념에 따르면 현상과 물자체 간의 구별이 사라지고, 물자체가 오로지 물자체로서 체험되는 순간이 실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