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Kant handelt in der transzendentalen Methodenlehre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von der Unzulänglichkeit der transzendentalen Elementarlehre. Die Elementarlehre legt das Material und Bauzeug für das System der reinen Vernunft vor. Aber mit Material und Bauzeug kann die Vernunft ihr Anliegen nicht vollständig leisten. Denn empirisches Material und Bauzeug ist für die Vernunft das Andere. Daher kann die reine Vernunft sich selbst nur indirekt erfahren. Die Aufgabe der reinen Vernunft, d. h. die Erstellung der Logik der Wahrheit kann durch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und die transzendentale Analytik nicht bewerkstelligt werden. In der Ästhetik und der Analytik bleibt diese Aufgabe unverstanden. Dieses Unvermögen drückt Kant in der transzendentalen Dialektik und der transzendentalen Methodenlehre auf eine Weise des Skeptizismus aus. Dieser Skeptizismus ist aber nicht ein empirischer Subjektivismus. Der Skeptizismus in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hängt mit dem theoretischen(spekulativen) Gebrauch der Vernunft zusammen. Durch den theoretischen Gebrauch kann die Vernunft ihre eigene Aufgabe nicht adäquat tun, weil die Vernunft die Dinge nur auf die Weise der sinnlichen Erfahrung weiß. Ihr Wissen ist dadurch nicht die Logik der Wahrheit. Kant stellt fest, daß die Vernunft nur in ihrem praktischen Gebrauch die Legitimation der Wahrheit hat. Dieser Charakter der Wahrheit enthält die Bedeutung des Führwahrhaltens. Das Führwahrhalten der Wahrheit geschieht auf die Weise des reinen sinnlichen Anschauens. Das reine sinnliche Anschauen ist subjektes Erkennen, aber zugleich objektiv gültig.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방법론”에서 자신이 “선험적 원리론”(“선험적 원리론”은 “선험적 감성론”과 “선험적 논리학”을 포함하고 있고, 또 “선험적 논리학”은 “선험적 분석론”과 “선험적 변증론”을 포함하고 있다) 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선험적 원리론”은 순수이성의 완전한 체계를 위한 소재를 제공한다면, “선험적 방법론”은 이러한 소재를 토대로 해서 순수하고 사변적인 모든 인식의 건축물의 체계를 그리고자 한다. 순수사변 이성은 진리의 논리학을 가능케 한다고 칸트는 “선험적 원리론”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자신이 “선험적 원리론”에서 이러한 과제를 달성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방법론”에서 순수이성의 철학은 단지 오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이러한 역할은 결국 “소극적 내지 부정적” 역할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방법론”에서, 그 앞의 “원리론”에서 이러한 점에 대해 적절하게 논하지 못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 칸트는 “방법론”에서 순수이성의 진리의 성격을 ‘...라고 생각함)’(Fürwahrhalte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이전의 객관적 진리에 대한 주장을 독단적 태도라고 보면서, 우리의 진리는 결국 ‘실천적-독단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의 진리 체계는 일종의 도덕적 체계라는 것이다. 도덕적 체계란 우리의 인식은 쾌불쾌, 욕구 및 경향성과의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언제나 경험적 원천과 관계할 수밖에 없고, 경험적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인식은 그 자체로 ‘발생’(Geschehen)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인식의 ‘발생’은 객관적 진리의 ‘정적인’, ‘영원한’ 성격을 지양한다. 그리고 인식의 ‘발생적’ 성격은 다른 한편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진리는 확신(Überzeugung)의 성격을 지니며, 주관적으로 어떠한 것을 ‘진리라고 생각함’의 성격을 지닌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로크와 버클리의 회의주의를 한편으로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진리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칸트는 특히 “방법론”에서 이러한 진리의 전 체계를 약도하고 있다. 칸트는 로크의 경험적 주관주의를 넘어서는 동시에 버클리의 언어의 추상성을 넘어서서 새로운 진리론을 보이고 있다. 그것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언급할 수 있다. 하나는, 선험적 감성론에 의해 경험의 주관성을 지양하고, 둘은, 철학적 사유는 단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순수 감성적 직관을 통해서 세계의 현재함(Gegenwärtigsein)에 대한 이해의 표현으로서 일어난다는 점이며, 셋은, 이러한 사유는 일종의 회의주의의 휴지상태를 거쳐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유는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객관적 진리에 대한 주장(Behaupten)으로서가 아니라, 진리라고 생각함(Führwahrhalten)이라는 형태로 일어난다(gesche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