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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왜 요한복음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제의적 용어로 표현하지 않는지를 이해해보려는데 있다. 이를 위해 논문은 예수의 첫 번째 성전 방문(요한 2,13-22)의 의미와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죽음 이해를 다룬다. 논문은 또 요한복음의 예수의 죽음에 대한 표현과 속죄의 의미 또는 대속적 희생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희생이나 대속으로 해석한다. 요한복음도 예수의 죽음을 희생으로 표현하나, 제의적 희생 용어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예수의 첫 번째 성전 방문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는 자신을 성전으로 소개한다. 그래서 동물의 희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더욱이 요한복음이 편집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기원 후 70년에 파괴된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의 죽음을 새로운 용어나 다른 표현으로 서술한다(전치사 ‘∼위하여’). “나는 세상의 생명을 위한 빵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는 민족을 위하여 죽는다.” 예수는 세상과 백성을 위하여, 민족과 그의 양들을 위하여 죽는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죄는 예수를 믿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예수의 죽음은 죄에 대한 희생과 죽음과 심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요한의 의미에서 대속은 믿음으로 표현된다.


This essay is intended to understand why the Gospel of John does not express the death of Jesus as language of sacrifice and atonement. It seeks meaning in the episode of Jesus' First Visit to the Temple (Jn 2,13-22) and the understanding of Jesus' death according to the Fourth Gospel. It also examines expressions for the death of Jesus and the sense of atonement or a vicarious sacrifice in the Gospel of John. Early Christians interpreted Jesus' death as sacrifice and atonement. The Gospel of John has expressions of sacrifice for Jesus' death, but these are not expressed in sacrificial language. The reason is discovered in the story of the visitation of the Temple. In the story, Jesus presents himself as the Temple and the sacrifice of animals in the Temple is no longer necessary. In addition, when the Gospel of John was edited, the Temple of Jerusalem was already destroyed in A.D. 70. Thus the Gospel of John expresses Jesus' death in new terms and other expressions (the preposition 'for'): "I will give the bread for the life of the world,", "The Good Shepherd gives his life for the sheep,", or "He dies for the people." Jesus dies for the world, for the people, the nation and his sheep. According to John, sin is the refusal to believe in Jesus. His death gives eternal life to those who come to believe in him. The death of Jesus is regarded as sacrifice for sins or deliverance from death and judgement. The atonement in the Johannine sense is expressed as bel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