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철학의 번역’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번역의 철학’을 정립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철학의 번역, 번역의 철학’은 번역철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철학계의 현실에서 중심화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번역의 가치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번역 대상 원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이다. 번역의 주관성과 다수성 그리고 시대성을 모르고 절대유일의 초시간적인 번역을 추구하려는 것은 지적 오만과 낭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번역은 원전에 충실하려고 무단히 시도할 뿐, 원전 그 자체가 결코 될 수 없다. 나의 사고가 그 시대의 사고로 아무리 귀착되어 있어도 나의 언어가 이미 그 시대의 언어로부터 유리되어있기에, 원전과 번역의 이중성은 상존한다. 글이라는 것은 나의 손을 떠나는 순간, 벌써 시간과의 이중성, 타인과의 이중성, 그리고 다른 언어와의 이중성을 전제한다. ‘문헌학에서 철학에로’라는 서양식 사고는 ‘소학에서 대학에로’라는 동양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번역에서 철학에로’ 나가야한다. 공연한 남의 문제의 전이보다는 진정한 나의 문제가 번역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말로 새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관이 없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It is meaningful that we find out problems from ‘translation of philosophy’, and establish ‘a philosophy of translation’. ‘Translation of philosophy, or philosophy of translation’ is an important topic for us to treat numerous translations in philosophy. The matter is that we have a groundless prejudice against translation and the unconditional worship of original text. If we have pursued absolute, unique, and transcendent translation beyond subjectivity, multiplicity, and time, it would be an intellectual arrogance or an romantic ideal. Translation only attempts to devote to its original text, but cannot be the text in itself. Even though my thinking arrived at the thought of the age, my words already departed from the language of the age, so there could be duplication between text and translation. The western way of thinking as ‘from philology to philosophy' would be translated in the eastern way of thinking as ‘from the little learning to the great learning'. More positively, translation should be promoted to philosophy. I prefer to represent the real issue of ours rather than receive the others. Otherwise, we are still staying in colonial studies. The proposition that ‘It can not be translated in Korean.’ probably denotes the fact that ‘I as a Korean have no my world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