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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의 이기론은 주자(朱子)를 비롯한 선유(先儒)들의 경우 보다도 리(理)의 실리성(實理性)을 더 크게 강조하고, 인심(人心)ㆍ도심(道心)설에서는 도심의 준칙성을 더 강조하며, 개별 인간의 ‘분수리(分殊理)’를 보다 더 크게 중시한다. 특히 실리(實理)를 갖춘 인간의 심(心)이야말로 만사만물의 리(理)를 요해(了解)하고 거기 대처할 수 있는 활심(活心)인 것임을 격단으로 크게 긍정한다. 인간의 실천적 결단력을 매우 강조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역사적 현실태에 대한 해석에서 반계가 체득한 실리(實理)는 매우 주체적인 것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계는, 삼대(三代) 후로는 통치자들의 사욕(私欲)에 따른 폐법(弊法)의 시행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객관적 사리에 ‘반(反)’하는 비리(非理)와 인습(因襲)의 현실태가 누적적으로 조성되어 왔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특히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다. 즉 삼대 이후 길이 지속된 폐법과 난정(亂政)의 역사적 현실에서는, 조선 성리학이 숭상하는 주자학이라든가 혹은 ‘조종의 법제’나 현실의 왕권조차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다는 사실의 발견이 그것이다. 그는 드디어 현실태 통치체제라든가 주자학까지도 넘어 서서, 삼대의 경우와 같은 왕정(王政)을 일으킬 수 있는 근원적 통치법제를 새로 탐색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폐법(廢法)을 변혁하지 않고서는 지치(至治)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하는 그의 변법론이 탄생한 것이요, 그 구체적 전개가 곧 조선후기 실학의 탄생이었다. 국가 정치가 해야할 일은 우선 만백성의 생활 현실을 안정시킴으로써 그들이 자활(自活)하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항산(恒産)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토지(土地)야말로 천하의 대본(大本)’이라는 소신을 편다. 만백성의 현실 생활이야말로 기본으로 중시해야 한다는 ‘이하위본(以下爲本)’이란 새로운 깨달음도 일어났다. 그런 새로운 시각에서는 ‘군주라는 것도 백성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하는 근원적 성찰이 뒤따랐다. 획기적인 역사의식의 개안(開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의 변법론은 전국 농토를 공전(公田)으로 하고 직역에 따라 이를 배분한다는 공전제론(公田制論), 경상비(經常費)를 책정하여 국가 재정을 운용하고 모든 공직자에 늠록을 지급한다는 고안, 지방과 중앙의 단계별 학교교육을 강화하고 공거제(貢擧制)를 실시하며 문벌제ㆍ과거제를 폐지한다는 고안, 노비법의 철폐와 공용노동으로의 대치론, 전국 군현(郡縣)의 감생(減省)과 지방행정 강화론 등으로 요약된다. 반계의 실학은, 옛 성인이 남긴 경전 공부를 통해 탐색한 삼대 왕정의 원리를 살려내어 조선 후기의 현실태를 근원적으로 개혁함으로써 이 땅에다 참다운 왕정을 구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국가체제 개혁론이었다. 객관적으로 그것은 중세 후기라는 구체적 시기를 맞아, 무질서하고도 지리멸렬한 현실태를 제일적(齊一的)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려는 변법론(變法論)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령 성리학의 무실론적(務實論的) 경장론(更張論)처럼 현실의 비리를 개혁하려는 의도에서 어느 시대에나 제시되는 일반적 개혁론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할 것이다.


被称为最初将朝鲜后期的实学体系化了的磻溪柳馨远(1622~ 1673)的学问当然也来自性理学。 但是磻溪的理气论具有强调理的根源性的特性。据磻溪的理论,无论自然现象还是礼乐行政等人间政治现象,将其形象化的是气的作用,但是,使这种气的作用万古以来没有任何差错地运行的,却是因为理作为至真ㆍ至实的实理具有其自体运行的契机。 这世上现实态并不是托付于‘气的用事’,根源地讲是因为随着理将万物毫无保留地体现所展开的现象,这是一个重新领悟到世上的万事万物各个自己自体具有独特的意义的实理论。 磻溪的心性论也是非常特殊的。据磻溪的理论,人间的心虽然只有一个,但其中有理ㆍ气之分,各己作用于道心与人心,而道心总是成为人心的准则。性理学一般认为以天命天生的性是人间的本质。但磻溪反而强调心才是统括性ㆍ情而可以完成‘中ㆍ和’之德的活心。此活心又与其实理所配对的,是至真ㆍ至实的,蕴藏着其自体运动的契机。 磻溪确信人间天生实理的根源性,以‘理一分殊’的概念来说明人间的多样性。所以他确信,王有王的分,奴隶有奴隶的分。这是具有很大的政治社会意义的理论。也就是说:无论多么强大的王权或某种权威的先儒,在天理前也只是具有一个分殊的理的存在而已-即相对主义的思维。另一方面,实理是人间各自天生的,以此可以订立为具有主体性的存在。所以说明社会构成人员理想的配置关系的‘各得其所’论在磻溪实学上带着崭新的意义而复苏起来。 世上根源的理总是以实理健在,道心总是作用于人心的基准,更何况人间都是从天理天生各己自身的分的‘分殊理’的存在,而为什么非理猖獗,乱世比治世更加连续呢? 据磻溪的理论,向下顺流是水的属性,而人间社会的恶正如引水至于山上是形势所造成的。行恶时唯恐别人所知,而非要掩盖其恶的行为就可以反证人间的本性ㆍ本心ㆍ本分是正直的。乱世比治世更长久地连续下去,是因为过了三代以后支配层纵着私私欲欲制造弊法施行下来的敝习长期积累就成了家常便饭也就习以为常了。 当然朱子也说过三代以后施行王政的历来就没有。集性理学之大成的朱子所提示的回复王政的捷径就是:因为‘君主之一心即天下之大本’,所以通过心性的涵养来纠正此一心才是 ‘当务之急之当务之急’。 如 ‘大明中天’般崇仰朱子学的朝鲜性理学坚持统一路线是理所当然的。朝鲜性理学的救弊论也贯通了变通事物的更张伦。 但是磻溪所相信的是,以时务论的更张策并不能解决凡是三代以后以弊法因袭下来的历史性现实状况。以朱子学的心法并没有完成至治,也没有完成王政。磻溪所重视的是中国与朝鲜最终领教了被夷狄亡国之辱的历史性事实。 据磻溪的实理所省察,就支配层纵着私欲掠夺兆民的因袭下来的现实状况之下绝对没法论治世。他确信为了将称为共同体的国家符合天理之公道维持下去,只有‘土地天下之大本’才是能解决兆民生活的原理。也重新领悟到只有重视兆民现实生活为本的‘以下为本’的道理。这种新的视觉也引发了‘君主也是为百姓而设置的人’的根源性省察。磻溪已超越了朱子,并走向了以与朱子不同的视觉确立王政论的道路。终于确立并达到了‘不改革废法就没有回复至治的道路’的实学变法轮的境地。 磻溪变法论的发明却是以具有最基本的国家改革论性格的内容为组成的。而推进并实施国家改革论的也是以君主和宰相为首的人们。说是要实现至治又重新依赖人间的心性是不可能的事情,所以确立严格而客观的基准成了变法所必须的前提。   大抵法者 猶匠人之绳尺也 猶治人之模范也 所谓绳尺非绳尺 所谓模范非模范 虽有天下良工 无以成一间室一个器 世上徒谈良工而谓不必用其绳尺模范者 其不思甚矣 (≪磻溪随录≫4-23 田制后录 下) 磻溪的变法论是为了定立可以实现王政的客观基准。但是因为变法的内容既应该涉及多方面又要贯通各己多样的领域,有必要重新确立更加详细的细则基准。如废止结负法以顷亩法来统一的规定就是其中之一。将原来15豆1石的量制重新更改成10豆为1斗也是其中之一。又比如,因为君主的禄也不能是无限制的,所以规定“御需也要规定其经常的数,每年从漕税中划入,按照‘国君是卿禄的10倍’的古制来准定其数”。磻溪特别重视《礼记》․《周礼》等礼制,而定立其所谓的六经,也是因为这是为了确立实相客观的规范所必需要做的事。 那么寻找出留于经传的三代王政的原理,符合现实地发明出来的磻溪的变法论会不会太过于复古了呢? 因为其实儒学自体也带有复古性倾向,所以实学也不免会有这种倾向。磻溪的变法论将2000年前周公制定的《周礼》作为其基准就足以证实其复古性倾向。又如「教选制」的开头勤奖乡约的施行,在各个地域以士类主导的乡约为基础教育课程来坚定地运用,以达到进行教化奖励善俗的考案;刻板朱子的‘白鹿洞书院揭示’,将其高挂在出入门上作为学规的规定等复古的内容确实很多。 但是我们不能忽视一个事实,那就是磻溪的变法论是探究包括《周礼》在内的古代经传的原理,将歪曲的现实态进行根源性的改革,而并不是要将经传的内容原原本本地适用于现实当中。其明显的例子在教育问题上就可以看出。 《周礼》里只有大司徒用所谓6德·6行·6艺的‘乡三物来教育万民使其宾兴’的含糊的规定,而教育一般庶民的具体问题意识干脆就没有被记载。但是在磻溪的变法论中,虽然含糊但也收录了反映热望身份的上升的兆民宿愿的教育课程。即强调对百姓子弟进行基础教育的重要性,发明并设置了作为‘实现至治的根本基地’的乡痒。这就为百姓的子弟也开放了可以进士的道路。所以可以证言磻溪实学的教育论才真正反映了志向天·人合一的具体的现实性。 磻溪的实学是通过学习古代圣人留下来的经传,发扬所探索出的王政的原理,对朝鲜后期的现实进行了根源性的改革,是一个试图回复王政的新的国家体制改革论。客观地讲,这是想要克服在所谓中世后期的具体时期与地域形成的、支离消裂的现实的新变法论。磻溪实学的意图是改革现实的非理,所以可以说这与在任何时代都被提示的一般的务实论是具有不同性质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