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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연과 그 글쓰기의 소산인『삼국유사』를 서술의 방법론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첫 시도이다. 이에 대한 전제로 여기서는 먼저 일연의 균형의 감각을 살펴보았다. 대상과 사건에 대한 균형의 유지를 일연은 전면적으로 고민하였다. 이런 예의 하나는 불교와 민간신앙이 극심히 교차한 신라사회를 바라보는 일연의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삼국유사』전편에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신라를 온전히 그리자면 불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일연은 잘 알았다. 종착은 불교에 두고자 했으나 신라가 가진 민속종교의 여러 면을 담아두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더러 그 둘 사이의 갈등과 다툼 속에서 신라만의 독특한 신앙양태가 절묘하게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의 균형 잡힌 글쓰기의 태도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혁거세와 탈해의 출자(出自)가 민간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은연중에 밝혔으며,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승은 민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전설로 강화되어 간 것임을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불교와 민간신앙이 대립하는 현장에 서서, 그들이 맞닥뜨린 운명적 대결의 구도는 실로 신라가 거치지 않으면 안 될 통과의례임을 알았다. 이미 불교가 자리 잡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조차 왕이 찾아 나선 동서남북의 호국신을 불순한 것으로 쓰지 않았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같은 글쓰기는 그의 균형 감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この論文は、一然とその書き込みの所産である 『三国遺事』を、敍述の方法論で把握しようとする初の試みである。これに対する前提に、ここでは先に一然の均衡の感覚を見た。対象と事件に対する均衡の維持を、一然は全面的に悩んだ。こんな例の一つは、仏教と民間信仰が激しく交差した新羅社会を眺める、一然の視角から捜すことができる。 『三国遺事』の全編に、仏教の占める比重は言い換える必要さえないが、新羅を完全に描こうとすると、仏教だけで可能ではないという事実も、一然はよく分かった。終着は仏教に置こうとしたが、新羅が持った民俗宗教の多くの面を、盛っておくことに怠けではなかったし、たまにその二つの間の葛藤と争いの中で、新羅だけの独特の信仰様態が絶妙に生きていたことを見せてくれている。これは彼の均衡取れた書き込みの態度から出た結果物だった。赫居世と脱解の出自が、民間信仰に根を置いていることを密かに明らかにしたし、延烏郎と細烏女の伝承は、民間の悲劇的な事件が伝説に強化されていくのを逃さなかった。いよいよ仏教と民間信仰が対立する現場に立って、それらが出会った運命的な対決の構図は、実に新羅が経らなければならないイニシエーションなのを分かった。もう仏教が落ち着いた新羅の下代に至っているさえ、王が探して出た東西南北の神を不純なことで書かなかった。言い換えるが、このような書き込みは、彼の均衡感覚から出たのであ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