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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Herbst 1908 schickte Bischof Gustave Mutel aus Europa seinen französischen Mitbrüdern von der Gesellschaft der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MEP) eine frohe Botschaft nach Seoul. Er hatte Ordensleute gefunden, die auf eigene Kosten in Korea Schulen errichten und schon im Januar 1909 in den ”Fernen Osten“ aufbrechen wollten. Die Mel- dung hatte freilich einen bösen Nachsatz: ”es sind aber Deutsche“. Um zu klären, warum diese Deutschen sich mehr oder weniger unvorberei- tet auf den Weg machten in eine von französischen Priestern dominierte Mission, sind zwei Fragen zu klären. a. Wozu brauchte der Bischof die Helfer? b. In welcher Absicht gingen die deutschen Benediktiner nach Korea?


1908년 가을, 유럽을 방문 중이던 구스타프 뮈텔(G.-C.-M. Mutel, 閔德孝, 1854〜1933) 주교는 서울의 파리 외방전교회의 프랑스인 동료들에게 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교육 사업을 담당해 줄 수도자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적임자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1909년 1월 극동으로 출발하여 자체 비용으로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신의 마지막 문장에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그들은 독일인입니다.” 당시 한국 선교는 주로 프랑스인 신부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 독일인들은 왜 다소 준비가 미흡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한국 선교에 뛰어들려고 했을까? 이를 설명하려면 먼저 두 가지 의문이 해소되어야 한다. 첫째, 왜 뮈텔 주교는 조력자들이 필요했을까? 둘째, 독일인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한국을 선교지로 택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