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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의 형평사(1923-1935)와 일본의 수평사(1922-1942) 사이의 인권 증진 협력 활동을 분석하는데 있다. 형평사와 수평사는 전통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차별받아온 한국의 백정과 일본의 부락민의 신분 차별철폐와 인권 증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역사적 배경과 목적이 비슷한 이 두 단체는 출발부터 상호 협력에 적극적이었지만, 그 과정은 불가피하게 안팎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굴곡을 겪으며 역동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게 된다. 창립 직후 1920년대 초 두 단체는 상호 지지와 협력을 모색하는 양상이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사회 개혁 분위기에서 백정 지도자들과 비백정 활동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진 형평사는 지도부 사이의 파벌 대립과 일제 책략에 의한 ‘스파이 사건’을 겪으면서 수평사와의 협력에 소극적인 반면에, 1918년 쌀소동을 겪으며 발전된 수평사는 비부락민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배타적 조직으로 발전하며 형평사와의 협력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파벌 대립이 완화되면서 형평사는 수평사와의 협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1920년대 중반 두 단체의 협력은 상호 교류 활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20년 후반 일제의 전쟁 준비와 식민지 지배 체제 강화, 해소론 제기와 활동 방향 전환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 속에서 두 단체의 협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이와 같이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 연대의 시도로서 평가되는 이 두 단체의 협력 활동은 안팎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하며 전시체제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두 단체는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직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This research attempts to analyze the cooperative activities between Korean Hyongpyongsa (1923-1935) and Japanese Suiheisha (1922-1942) for the improvement of human rights. The Hyongpyongsa and the Suiheisha were founded with the goals to abolish social discriminations against paekjong in Korea and burakumin in Japan respectively who had been regarded as beings inferior to the main population of traditional Korea and Japan. In sharing with historical backgrounds and goals for their activities, they were enthusiastic to support for their counterparts. However, they were inevitably influenced from social situations in which Korean wa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ese complex conditions surrounding their human rights activities resulted in the dynamic fluctuations of their historical process. The Hyongpyongsa which was founded soon after the nationwide massive protest against Japanese colonial rule became passive stance for the cooperation with Suiheisha, supposedly because of the Japanese intervention like the ‘spy scandal’ in the early stage of the cooperation. In contrast, the Suiheisha was rather active to promote their cooperation with the Hyongpyongsa. Both developed their cooperation to exchange delegates for the counterpart organizations in the mid-1920s. However, in the late 1920s, their cooperation was discouraged in the aftermath of outer influences such as Japanese attempts for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World War, and Communist intervention for domestic social activities. Their cooperative activities for improving human rights no longer lasted in the early 1930s, and both ended their activities in the social atmosphere of the colonial suppression in Korea and Japan respectiv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