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본 연구의 목적은 전국시대 열국에서 설치하였던 봉군(封君)이 국가체제 하에서 ‘부국강병’을 위해 제도적으로 장려된 수단이었는지 아니면 특수한 계층의 독점적 전유물이었는지를 살피는데 있다. 종합적으로 초 봉군은 특수한 계층으로 초 봉군은 자신의 봉읍 안에서 행정, 재정 등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였고, 이러한 초 봉군의 존재는 초에 있어서 군현제의 전국적인 실시에 큰 장애물로 작용했고, 초의 군령ㆍ정령의 통일성에 있어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았다. 초 봉군의 존재는 전국 중ㆍ말기 초의 국력을 더욱 쇠약하게 만든 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진 봉군은 주로 ‘계공수봉’의 형태를 띠며, 진의 대외 팽창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친친수봉’ 형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양왕시기에도 진은 봉군의 봉읍을 군ㆍ현으로의 전환하는 과정에서 진이 완벽하게 이들의 세력을 흡수할 수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적극적인 대외 팽창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 봉군들은 자신들의 봉읍을 수비 내지는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봉읍에 군ㆍ현과 같은 군사적 기능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군사적 기능을 봉군 폐지 후 국가가 모두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whether Fengjun established by Lieguo in Zhanguoshidai was the means which was promoted as a system for enhancing the national prosperity and defense under the national establishment, or it was a exclusive possession dominated by privileged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