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논문은 근대불교의 ‘타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在家化主들을 비롯한 선원의 外護 인사들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선원을 운영하는 데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과 역할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들의 초상을 복원해 보면 근대선원의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여기서는 근대선원의 芳啣錄을 통해서 재가 화주 및 負木과 供養主 등 이른바 外護 인사들의 현황과 위상의 변화과정 및 그 배경과 원인을 고찰했다. 근대 선원에서 재가신자와 외호의 비중과 역할은 광복이후 점차 쇠퇴했으며, 1950년대 중후반을 고비로 선원에서 그 역할이 사실상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는 현모양처라는 시대정신과 불교계의 보수적 성향 그리고 1950년대 불교계의 중요한 사건이었던 불교정화운동(1954~1962)을 지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한국 근현대 불교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화주와 외호의 퇴장으로 선원의 독립성은 상실되고 선원이 사찰 운영에 부속되면서, 자급자족을 통해 참선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結社라는 선원 개설 초기의 취지가 희석되었다. 또한 禪農一致와 동적수행을 중요시하는 간화선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재가신자와의 연대 및 소통이 단절됨으로써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에 둔감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character of modern Korean Chan Buddhism with regard to the decline of the Lay Chief Donors(化主) and External Supporters(外護). They have aided externally, for example, living expenses and physical labor for monks and nuns, contrasted with the internal aid of the Buddha's teaching. They are, so to speak, 'the others' in modern Korean Buddhism. I survey the changing process, the background, and factors of the Lay Chief Donor and External Supporter. Their declines in Chan chamber are found in the Chan peaceful dwelling record (芳啣錄). The lay chief donner and external supporter's specific gravity and role atrophied gradually in 1945 or so. And their role in Chan chamber was over in the late 1950s. The reason is because of Buddhist conservatism and time sprit which is a wise mother and good wife. And then the Buddhist Purification Campaign(1954~1962) had a noticeable effect. While the decline of them in modern Korean Chan chambers may not seem significant, there were implications for Korean religious history. A key consequence is that the dynamic Chan practice and Buddhist role responsibilities were decl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