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80년 이래 독일 사회에는 종교의 재도래 현상이 목도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유행인가 아니면 좀더 깊은 정신적 방향설정의 변화와 관련된 시대사적 현상인가? 본고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종교의 재도래가 근세로의 전환을 동반해왔던 세속화 과정의 근본적 수정이라고 전제하면서 그 원인을 묻는다. 계몽주의와 궤를 같이한 세속화 과정은 18세기에 들어 고조로 상승되었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68세대의 개혁프로그램에서 극단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계몽주의의에 대한 신념은 80년대 들어서 급격히 그 위세가 약화되고 있다. 계몽주의는 더 이상 사회와 인간을 묶어주는 통합적 틀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련의 작가들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회귀하고 있으며, 그것은 반그리스도교적 성향을 띤 릴케나 헤세와 같은 작가들이 그리스도교적 이념이나 모티브를 변형적으로 수용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을 띠고 있다. 본고는 이런 예를 1995년 출간된 페터 한트케의 드라마 불멸을 위한 준비에서 보고 이 작품을 분석한다. 한트케는 60년대 문화적 전통에 대한 강력한 반항아로서 출발하였으나, 70년대 들어서 곧 “신주관주의”로 표시되는 내면에로의 침잠을 주제로 하는 문학적 경향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80년대에 소설 서서히 돌아가는 고향에서 다시 역사로 귀환한다. “고향”이란 그에게 있어 역사적 참여가 구속적 규범 하에 의미 있게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이점에서 그는 68세대의 사회 참여성을 긍정하되, 규범의 해체는 거부한다. 불멸을 위한 준비는 한트케의 이런 성향을 더 높은 차원에서 궁구하며 실현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한트케에게 중요한 점은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있다. 그 규범은 놀랍게도 이미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내재하여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전부터 가까이 존재하는 가능성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내적 결함이다. 한트케가 볼 때 세계문명은 모두 이런 결함으로부터 잉태되었으므로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작품의 주인공 파블로 역시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현대 유럽인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여성 설화자와 함께 “공의의 법”을 정초하고, 그것을 선포하며 실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극히 긍정적이다. 그 공의의 법은 폭력적 강제성 없이도 누구에게든지 동의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공히 권력에의 욕망으로 차 있다. 즉 그들 역시 역사의 부정적 흐름에 연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지상에서 완전한 “공의의 법”을 실현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즉 인간과 사회는 그 탄생과 과정에서 죄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이런 죄스러운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도자로서 세계의 새로운 공의의 법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를 높일 때, 그들의 영향을 받는 민중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울려나오는 “천사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으며, 이것은 종국에 사랑의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한트케의 드라마는 이런 점에서 그가 자주 써오던 작법인 “동화와 같은 결말”을 차용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더 나아가는 사변을 요청하고 있다.